글쓰기/산문(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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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아아- 헌책이 자아내는 정취란... 대형서점 브랜드로는 알라딘, YES24에서 온·오프라인 헌책방을 운영한다. 주로 알라딘 중고매장을 이용하며 가끔 신촌 글벗서점에 가서 책장을 뒤진다. 헌책 특유의 낡은 종이에서는 30년 전의 냄새가 난다. 오늘은 알라딘 중고서점 신촌점까지 걸었다. 한 시간 조금 덜 걸렸다. 서점에 도착했을 즈음엔 파릇파릇한 대학생들도 보였다. 나이는 속일 수 없나 보다. 젊음이 뿜어내는 생생한 눈빛과 걸음걸이와 웃음소리는 어쩜 그리 싱그러운지. 알라딘 중고서점 신촌점에 도착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갔더니 상상했던 그대로의 헌책방이 눈앞에 펼쳐졌다. 합정점보다 좁았으나 훨씬 헌책방다운 모습이었다. 산문 코너에 갔더니 김훈 작가 산문집 '연필로 쓰기'가 꽂혀 있었다. 꺼내서 읽어보는데 그렇..
2020.10.19 -
강릉으로 혼자
내일 아침이 되면 집 밖을 나설 거야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갈 거야 서울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삼천 원짜리 호두과자를 사고 한 개만 먹을 거야 편의점에서 커피 우유를 사고 승차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갈 거야 마스크를 낀 아주머니에게 참치 꼬마김밥을 달라고 할 거야 아침 식사를 비닐봉지에 넣은 채로 자박자박 걸어갈 거야 기차 안에 앉으면 창가 자리에 앉아 찰칵 사진 찍을 거야 사진이 잘 찍혔는지 보고 마음에 들면 너한테 보내줄 거야 새로 산 중고 책을 왼손에 펼쳐 들고 창밖 풍경과 종이를 번갈아 바라볼 거야 유리창 너머 산과 들판을 보며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을 더듬을 거야 강릉역에 도착하면 우와 강릉이다 속으로 소리치며 피식 웃을 거야 흐릿한 하늘이 나를 안목해변까지 걷도록 안내할 거야..
2020.10.18 -
영어 접두사 연구 De
대학 재학 중 비엔날레 도슨트(전시 해설) 알바로 일했다. 국내 최초의 디자인 비엔날레였다. 내가 다니는 대학보다 좋은 학교에 다니는 애들이 많았는데 운좋게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레산드로 멘디니(en.wikipedia.org/wiki/Alessandro_Mendini) 부스에 배치됐다. 본격적으로 전시장에 오르기 전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어느 유명 교수와 함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당시 교수는 내 전공을 물었다. 영문학이라고 답했다. 그는 디자인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좋은 답이 떠올랐다. 영어에서 De-는 주로 '쇠퇴, 후퇴, 빼기' 등 Negative한 변형을 의미한다. "디자인(Design)이란 ..
2020.09.28 -
영화평론 <비포 선라이즈>
"그 감독 천재야". 죽이 잘 맞는 친구에게 영화 를 이제야 봤다고 이야기하자 돌아온 말이다. 영화를 3번 보니 감독이 천재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기서 천재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나 사물, 사건을 가지고 특별한 메시지를 만들어 전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비포 선라이즈 감독인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그런 면에서 천재가 확실하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는 '남녀관계'와 '시간'이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하게 되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어떻게 헤어지는지, 헤어지고 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잔잔하고 차분하게 서사한다. 기차에서 처음 만난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비엔나에 함께 내려 사랑을 나눈다. 영화의 줄거리다. 시간이라는 키워드의 힘 비포 선라이즈 대사에는 유난히 시간이 많이..
2020.09.19 -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전생에 초식동물이었나 보다. 주변을 살피고 관찰하는 데 소질이 있다. 이런 행동은 초식동물의 특성 이라고 들었다. 어제는 친하다고 생각했던 선배와 절교했다. 차마 상처가 되더라도 사람이니까 "두 번까지는 그럴 수 있다"는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산다. 이번이 세 번째였다. 그 형은 원래 말을 그렇게 막하는 사람이 아니, 었다. 최근에 본 그의 입은 독설과 아집을 퍼나르는 창구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는. 나는 그 형이 그렇게 된 건 과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술이 거의 매일 그의 입으로 들어가서 뇌를 갉아먹은 것은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소주를 멀리하게 됐다. 소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 대부분은 '말술이었던 사람도' 예외 없이 사십 오십 되면 신체적으로 이상이 온다 직장 선배가 풍이 온..
2020.09.19 -
백은선 시인에게 당부하는 글
안녕하신가요, 백은선 작가님. 서울 마포구에 사는 백은선 산문 독자입니다. 저는 작가님의 시를 아직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능세계라는 시집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어요. 며칠 전에 영풍문고에서 한 권 사려고 했는데 재고가 없어서 헛걸음 했어요. 주간 문학동네에서 작가님이 쓴 '연재를 시작하며'를 읽고 그냥, 좋았습니다. 가슴 한켠이 시려오기도 하고, (작가님은 싫어하겠지만) 나랑 비슷한 색을 가진 사람이구나 하며 일종의 동질감과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오늘 를 읽고 글을 씁니다. 먼저 감사의 말씀부터 드립니다. 작가님 덕에 한강 작가를 다시 보게 됐거든요. 산문을 쓰는 외국 작가도 덕분에 소개받아 몹시 기뻤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산문 마지막 즈음에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너무 싫다고 생각되면 꼭..
2020.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