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산문(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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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솥회사 CS본부장과의 미팅에서 얻은 교훈
사업제휴를 위해 밥솥회사에 콜드콜을 하고 일정을 잡아 담당자들과 미팅을 했다. 유명 밥솥회사라 그런지 건물도 꽤 크고 회의실도 깔끔했다. 그러나 주식에 비해서는 초라한 외관의 건물을 보고 내실이 튼튼한 기업이구나 생각했고 상대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동안의 얼굴에 하얗게 샌 머리, 훈련된 미소로 무장한 그는 미팅 내내 질문으로 일관했다. 명함에도 적혀있지 않아 부서를 몰랐으나 자신을 CS본부장이라고 소개했다. 사실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와도 수차례 미팅을 진행해왔다고 하며, 자신의 신상품 가격이 적정한지를 묻고, 우리가 진행하는 교육장의 커리큘럼과 사진을 요청했다. 무척 뻔뻔하지만 우리가 을인 걸 어쩌랴. 많이 도와달라는 말을 호소하며 미팅을 마무리했다. 인사를..
2018.08.30 -
워라밸이라는 단어의 함정
워라밸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Work and Life Balance라는 영어식 표현의 축약어로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한다. 좋은 직장의 조건에 속한다는데, 글쎄... 직장인으로 치자면 사원, 대리 시절까지는 실현 가능한 단어일 수 있으나.. 내가 곁에서 직접 보고 경험한 성공하는 사업가, 성과로 인정받고 빠르게 승진하는 사람들에게 워라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직장인 A와 B가 있다고 치자. 둘 다 속칭 SKY라고 불리는 명문 대학을 졸업했고, 비슷한 지능과 경력(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둘의 직장 내 성과를 가르는 기준으로 나는 업무에 대해 투자하는 시간의 양을 꼽고 싶다. 실제로 애정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해보니 나름의 성과도 나오고, 연봉도 오르고, 인정도 받고, 직급도 올랐다. 문제는 머리속..
2018.08.25 -
나는 왜 조던 피터슨을 좋아하는가
이 글은 제가 좋아하는 출판기획자(마케터)에게 보낼 목적으로, 블로거팁닷컴 독자들을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저는 요즘 조던 피터슨이라는 이름의 지식인에 푹 빠져 있습니다. 과거 하바드 대학의 교수였고, 지금은 토론토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그를 유튜브 영상으로 처음 접했는데요. 그 내용이 몹시 충격적이었습니다. 왜 극소수의 여성만이 사회 최상위 직업군에 종사하고 있는지, 평등을 외치는 소위 평등 지지자들은 왜 잘못된 질문을 던지는지에 관한 영상이었습니다. 어느 한국분이 "남자가 여자보다 저 많이 버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번역하고 일부분을 편집한 채로 올려서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를 타고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저는 이 영상을 보고 조던 피터슨의 현실감각에 놀랐습니다. 대기업 임원들과 소위 엘리트라 ..
2018.07.11 -
뉴스타파 후원을 시작하는 이유
기자는 아니지만 언론사에서 기자들과 함께 4년 1개월을 근무했다. 조선과 중앙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기사를 접했고,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뉴스타파는 현재 MBC 사장으로 취임한 최승호 PD가 MBC에서 해직되고 차린 독립언론으로 유튜브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오늘부터 매달 소정의 금액을 후원하기로 했으며 블로그 오른쪽에 배너도 달아두었다. 뉴스타파를 후원하는 이유 3가지를 정리해보았다. ▶ 뉴스타파 후원하기 https://newstapa.org/donate 1. 본래 기능 상실한 언론사들에 대한 실망감조선/중앙/동아 심지어 한겨레 및 군소 언론사까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 곪고 썪은 부분을 폭로하여 더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자정작용을 하는 장치로..
2018.06.19 -
기술은 삶에 필요한 것이지만 예술은 삶의 목적이다.
한국사회는 행복하지 않다. 우리가 세상에 행복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한다면 그는 분명 종교인이거나 철학가일 확률이 높다. 좁은 땅덩어리, 주거문제, 일자리문제, 부족한 자원, 치열한 무한경쟁, 남과의 비교, 유교문화의 폐습, 치솟는 물가까지 숨만 쉬고 살기에도 녹록지 않은 세상이다. 소확행이라는 기형어의 탄생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불행한 우리 사회가 낳은 기형어다. 최근에 참석했던 어느 외국계 기업의 마케팅 워크숍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국 본사에서 온 외국계 기업의 간부는 한국사회를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이 얼마나 처량하고 우스꽝스러운 단어인가. 큰 행복은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작..
2018.05.30 -
이창동 감독 영화 버닝을 보고 나서
누군가의 손에 이끌리는 것처럼 영화표를 예매했다. 이창동 감독 영화는 초록물고기, 밀양, 시, 박하사탕, 오아시스 등 거의 모든 영화를 감명깊게 보았기 때문에 버닝은 무조건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내심 벼르고 있었다. 버닝 역시 이창동 감독 특유의 은유가 영화 곳곳을 넘나들며 관객인 나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우연하게도 혼자서 찾은 극장 양쪽으로 커플 두 쌍이 앉았다. 영화가 끝난 후 그들의 반응 역시 완전히 엇갈렸다. 왼쪽 커플은 쥐죽은 듯하지만 만족한 표정이었고, 오른쪽 커플은 육두문자를 써가며 시간을 버렸다고 했다. 영화의 결말이 다가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창동 감독을 의심했으나 기우에 불과했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걸어오면서 내 머리속은 온통 버닝으로 가득차버렸다. 벤이 정말로 해미를 살해한 것일까..
2018.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