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22. 21:18ㆍ라이프/소탈한 여행기
인간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분과 점심약속이 있었습니다. 제가 한번 사기로 한 날이어서 요식업종에서 일하는 후배에게 연남동 맛집을 추천받았지요. 처음에는 샌드위치 식당을 추천받았으나 "아재 둘에게 어울릴만한 식당을 추천해주라"며 한번 더 부탁하니 <오우>를 추천하더군요.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과도 가깝지만 골목길에 있기 때문에 네이버 지도 앱을 켜놓고 찾아가는 게 좋을 거에요.
식당 안은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1시가 넘었을 무렵인데도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간판의 FROM MOTHER NATURE SLOWLY BUT SURELY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는데요. 오우는 오랜기간 한식당을 한 어머니의 레시피를 이어받은 젊은 시인이 차린 한식당입니다.
식당 내부는 이런 분위기입니다. 여성분들이 참 좋아할만한 인테리어라고 할까요? 모던하면서도 푸근한 느낌이 드는 상반된 분위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공간이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시가 적혀 있는 종이가 있더군요. 이래뵈도(?) 윤동주와 기형도를 흠모하는 문학중년이기에 시 한편이 가슴으로 다가왔습니다. 잠시 시 한편 낭독하고 갈게요.
기차는 간다 / 허수경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 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 속에 들어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메뉴판을 보면 주인장의 철학이 보인다"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방금 지어낸 말이기 때문에 처음 들어보셨을 겁니다. -.,-; 오우의 메뉴판에서는 손님을 진심으로 대하겠다는 주인장의 철학이 드러났어요. 좋은 식재료를 서술한 차림표에서 느껴지는 그 정성이, 진심으로 다가와 소소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인분이 PT를 시작했다고 하여 단백질을 보충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BEEF 메뉴(지리산 산두릅과 불고기 채소쌈, 기장 백미솥밥)를 시켰어요.
약 10분 정도 지나서 밥이 나왔습니다. 찬이 어찌 그리 맛있고 몸에도 좋아보이는지요.
솥뚜껑 안에는 조밥이 들어 있었는데요. 밥알이 고슬고슬 살아있었습니다.
고기와 채소도 신선했고 국도 시원해서 허겁지겁 그릇을 비웠어요. 친애하는 일행분도 맛있다며 한 마디 하셨습니다. "여기는 담백한 맛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좋아하겠다"고 하셨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터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순두부 요리도 한 숟갈 입에 넣었더니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더군요.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찬을 하나씩 맛보느라 쌈밥이라는 걸 깜박 잊고 있었군요. 깻잎 한 장을 펼치고 고기와 야채를 올려봅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이번에는 양배추를 펼치고 두릅나물과 파프리카, 버섯을 올려 한 입 먹어봅니다. 꿀맛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죠.
두부와 무, 콩나물이 들어간 국물은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주기에 충분합니다. 카페가 몰려 있지 않은 조용한 연남동 거리에서 맛있는 한식을 즐겨보고 싶은 분에게 <오우>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