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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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현 웹시집 현 가의 몰락
서평이라기 보다는 어느 시인의 등단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과거 전업작가의 단꿈에 흠뻑 젖어 있을 때 마음에 드는 작가를 찾고 그의 글을 필사하곤 했다. 이슬아 작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오늘 아침 출근하기 전에는 오랜만에 필사를 해보자며 이슬아 작가의 칼럼을 읽었다. 어떤 시인의 데뷔 방식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이슬아 작가는 글에서 계미현 시인과 웹시집을 소개했다. 몹시 궁금해졌다. 얼른 다른 창을 열어 계미현 시인의 웹사이트에 들어가봤다. 검은 배경 화면 위로 개미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개미를 클릭했더니 계미현 작가의 낭독회 동영상이 나오기도 하고 시인의 말이 나오기도 했다. 마치 미술관에서 인터렉티브 예술작품을 보는 순간의 감흥이 느껴졌다. 웹시집 현 가의 몰락https://thefalloft..
2025.07.15 -
이병률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 서평
이토록 아름다운 시인이었을 줄이야! 대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중령님이 산다. 중령님의 추천으로 어느 군부대에 온라인홍보 자문을 하러 갔다. 자문을 마치고 중령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병률 작가 이야기가 나왔다. 이병률 산문집 '끌림'을 읽고 있는데 별로 끌리지 않더라고 이야기했다. 중령님은 "40대가 되면 공감이 갈 거예요"라고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40대가 된 지금 다시 읽은 이병률의 글은 가슴으로 읽혔다. 어쩜 그리 좋은지. 난 이병률의 시가 어려운 어휘를 사용하지 않아서 좋다. 쓰이지도 않는 어휘를 나열한 채로 그럴싸해 보이려 작정한 시들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활용해 절절한 시를 엮어낼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는가. 이 시대에 그런 시인이 있기는 한가? 폼 잡지 않..
2020.10.05 -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서평
마냥 아쉽다. 박준 시인에게 나쁜 감정은 없다. 시집 전체적으로 시인이 완전하게 자기 생각을 펼쳐놓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까지 도보여행하기로 계획했다고 치자. 고성에서 해남까지 10분의 6 혹은 7쯤에 해당하는 부산에서 멈추고 버스 타고 KTX 타고 서울로 돌아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다리 아파서 그랬는지 의욕을 상실해서 그랬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의 시에서는 감정의 극단이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이를 '절제의 미'로 볼 수도 있지만 어딘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완전히 내보일 수 있는 것도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경계하는 움츠림이 보였다. 이 시집은 끄트머리에 있는 발문이 시 자체보다 좋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미려한 분..
2020.10.04 -
문장수집 8 고은 <순간의 꽃>
영화 로 고은의 시를 처음 접했다. 시인 고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성추문이다. 그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단 1도 없다. 그러나 그의 시 가운데 은 정말이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짧은 시에 이렇게 거대한 생각의 덩어리를 담을 수 있다니! 시를 읽은 후의 감동과 여운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시의 파편이 내 가슴 깊은 곳을 저민달까. 좋아하는 헌책방에 가서 고은 시인의 시집 을 사서 읽고 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시집이 나와있는데 그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이름난 시인의 시집이라 할지라도 그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시가 아름답지 않다는 것. 그리하여 어느날 나는 스스로 타협했다. 시집 한 권에서 좋은 시 3개만 읽을 수 있다면 그 시집을 소장하기로 했다. 고은의 시집 은 ..
2020.09.21 -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전생에 초식동물이었나 보다. 주변을 살피고 관찰하는 데 소질이 있다. 이런 행동은 초식동물의 특성 이라고 들었다. 어제는 친하다고 생각했던 선배와 절교했다. 차마 상처가 되더라도 사람이니까 "두 번까지는 그럴 수 있다"는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산다. 이번이 세 번째였다. 그 형은 원래 말을 그렇게 막하는 사람이 아니, 었다. 최근에 본 그의 입은 독설과 아집을 퍼나르는 창구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는. 나는 그 형이 그렇게 된 건 과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술이 거의 매일 그의 입으로 들어가서 뇌를 갉아먹은 것은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소주를 멀리하게 됐다. 소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 대부분은 '말술이었던 사람도' 예외 없이 사십 오십 되면 신체적으로 이상이 온다 직장 선배가 풍이 온..
2020.09.19 -
문장수집 6 루피 카우르 시집 <밀크 앤 허니>
찰스 부코스키 덕분이었다. 그동안 읽었던 영시는 어찌 그리 재미가 없는지. 읽는 게 고역이었다. 찰스 부코스키의 시는 달랐다. 그는, 어디선가 본 노숙자 같기도 하고 철학자 같기도 했다. 야한 농담도 하고 그렇게 솔직할 수가 없다. 그의 시를 필사한 적도 있었다. 찰스 부코스키 덕에 다른 시인도 찾아보게 됐다. 찰스 부코스키 다음은 전쟁시(나중에 소개하겠음)였고 전쟁시 다음이 루피 카우르의 시였다. 남녀가 성으로 갈린 이 시국에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까끌까끌한 면이 있다. 페미니스트 자체에 대하여 거부감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여성성을 강조하는, 남성을 거부하는 일부 여성은 결코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의 어떤 주장은 동조할 수밖에 없다. 남자인..
2020.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