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4. 12:17ㆍ라이프/책&작가 평론
찰스 부코스키 덕분이었다. 그동안 읽었던 영시는 어찌 그리 재미가 없는지. 읽는 게 고역이었다. 찰스 부코스키의 시는 달랐다. 그는, 어디선가 본 노숙자 같기도 하고 철학자 같기도 했다. 야한 농담도 하고 그렇게 솔직할 수가 없다. 그의 시를 필사한 적도 있었다. 찰스 부코스키 덕에 다른 시인도 찾아보게 됐다. 찰스 부코스키 다음은 전쟁시(나중에 소개하겠음)였고 전쟁시 다음이 루피 카우르의 시였다.
남녀가 성으로 갈린 이 시국에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까끌까끌한 면이 있다. 페미니스트 자체에 대하여 거부감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여성성을 강조하는, 남성을 거부하는 일부 여성은 결코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의 어떤 주장은 동조할 수밖에 없다. 남자인 나 역시 결국 여성의 성기에서 태어났으며 여성의 존재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인간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루피 카우르는 자타공인 페미니스트 시인이다. 여성성을 주제로 인스타그램에 시를 연재했고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자신의 시와 함께 그림을 그려 인스타그램에 함께 올린다. 현재 그녀의 팔로워는 400만명이다. 연재한 시를 엮어 책을 출간했고 단숨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내가 루피 카우르를 좋아하는 이유는 형식을 부수고 자신만의 세계를 단단하게 세워 올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는 산문같기도 하고 일정한 형식이 없다. 다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짧고 강렬하다'는 시의 이상만 있을 뿐이다.
루피 카우르의 글은 엄마를 떠올리게 한다.
my heart woke me crying last night
how can i help i begged
my heart said
write the book
지난밤
가슴이 우는 나를 깨웠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가슴이 답했다
책을 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