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29. 11:19ㆍ라이프/잡문집
퇴근하고 인터뷰를 봤다. 중소 물류기업 대표가 면접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재직중인 회사의 휴가를 다 써버려서(참고로 지금 회사의 휴가는 일반적인 회사보다 적음) 퇴근 후에만 면접이 가능하다고 했고 면접볼 회사의 대표가 좋다고 했다.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책 블로그의신을 아이패드로 펼쳐서 보고 있었다. 대표는 7개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매출은 700억 정도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1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다. 마케팅 팀장을 뽑는 자리였다. 왜 이직하냐고 물었다. 어차피 사장처럼 일할 거라면 돈을 더 주는 곳으로 점프업하고 싶다고 했다. 대표도 점잖빼지 않고 본인의 과거를 이야기했다.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판 이야기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일반적인 면접에서 나오는 상투적인 질문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나의 단점부터 들이밀고 시작했다. 나의 정확한 캐릭터를 설명하고 조직이 원하는 바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이직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돈보다 가치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와 대표의 소중한 시간을 뺏고 싶은 마음도 없고.
인터뷰는 서로 자유롭게 질문과 답변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내가 대표에게 건낸 질문들 몇가지를 정리해본다.
나 "지금은 사장님께 바로 보고한다. 간섭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가?"
대표는 본인의 가장 가까이서 일할 수 있는 팀장을 원하고 대표와 합이 맞는 사람을 원한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했다. 팀장을 먼저 뽑고 그 다음 팀원들을 뽑기로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표에게 직보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나 "나는 팀을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로 만드는 데는 재주가 없다. 개인적인 환경에서 훨씬 더 나은 퍼포먼스를 경험했다. 팀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면 나는 맞지 않다."
어찌보면 치명적일 수 있는 단점을 초반에 바로 공개했는데 대표는 한참 웃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도 했다. 뭐 스스로 리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개인적인 환경이 더 어울리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근무환경을 제공한다고 했다. 고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고생길이 훤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표는 내가 Daum카페를 크게 운영했던 점을 주목하고 있었다. 엄청난 공을 들였을텐데 라는 말도 했다.
대표 "지금까지의 이력을 보면 창업을 했을 것 같은데 사업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가?"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듣는 성향의 사람이었고 카페도 부모님이 회사에 다니길 원해서 양도했다고 했다. 나를 번지르르하게 포장하고 입사하더라도 뽀록날 게 뻔한데 속일 필요가 없는 거지 모. 대표는 솔직한 모습에 조금 놀라는 듯했고 본인의 계열사 대표를 맡은 친구들은 모두 사업실패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이쯤에서 생략하기로 한다.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며 명함을 건냈다. 먼저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연락하는 걸로 하자고 했다. 다음날 인사담당자에게 연락이 왔고 희망연봉을 알려달라고 했다. 어차피 고생길이 훤해 보이는 거 쎄게 불렀다. 30% 이상의 연봉을 요구했고 연락은 오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술을 마시며 나눌 수 있는 얘기들을 맨정신에 했으니 말이지. 대표도(동대문시장에서 성공한 사람이니 얼마나 화술이 좋겠냐만은) 술자리에서나 할 이야기를 했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마쳤다. 대표가 바로 연락을 줬더라도 한 번 더 숙고했을 것 같다. 자수성가한 사업가의 단점을 알고 그 부분은 본인도 고치기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프로였다.
프로를 만나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떠올리다
자신의 단점을 알고 장점에 집중한다는 것이야말로 프로와 아마추어를 나누는 기준이 아닐까 싶다. 아직까지 MLB 명예의 전당 헌액과 노벨문학상, 아카데미 감독상을 동시에 달성한 사람은 없다. 깔짝깔짝 이것저것 만져보는 건 시간과 돈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본인이 부족한 부분은 인정하되 잘하는 부분을 더 갈고 다듬는 사람이 진정한 프로가 아닐까 싶다. 나도, 당신도 어디는 튀어나고 어디는 들어간 울퉁불퉁한 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