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서 주류를 파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

2013. 6. 28. 03:54라이프/이것저것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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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타스브랜드는 브랜드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정통 마케팅 매거진입니다. 이 회사에서 파생된 마케팅 아카데미
유니타스클래스에서 브랜드와 브랜딩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이틀에 걸친 과정인데 첫날인 어제 하루는 이론 강의를 듣고, 현장에 가서 브랜드를 직접 보고 나름의 느낌과 생각을 정리한 후,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면서 브랜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알찬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국 스타벅스 일부 매장에서 커피와 음료 외에 와인과 맥주를 비롯한 주류를 판매하고 있는데요. 스타벅스 코리아 브랜드매니저의 입장에 서서 과연 한국 스타벅스 매장에서도 와인과 맥주를 파는 것이 타당한지 생각해보고 토론하는 '흥미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제가 스타벅스 코리아의 브랜드매니져이거나 의사결정자라면 와인과 맥주는 판매하지 않을 것입니다.


술문화와 수익성, 브랜드다움의 저울질


주변에 호프집을 운영하는 분이 계셔서 주류 비즈니스에 대해 여러가지 말들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는데요. 술장사는 안주를 많이 파는 것보다는 소주나 맥주 등 주류를 판매하는 것이 큰 수익률을 가져온다고 합니다. 즉 술을 파는 게 돈벌이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평소 술을 즐기는 애주가입니다. 술을 마시러 갈 때 가장 즐겨찾게 되는 술집은 바로 "술 맛 나는 곳"입니다. 분위기 있고 그럴듯한 곳 보다는 삼겹살이나 김치찌개에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곳을 즐겨찾게 됩니다. 맥주를 마실 때는 치킨이나 골뱅이를 하는 곳으로 갑니다. 물론 직장인 이야기입니다. 스타벅스에서 와인과 맥주를 판다? 글쎄요. 스타벅스는 커피나 음료를 마시는 곳이지 술맛을 당기는 장소는 아닌듯 합니다. "스벅가서 맥주 한잔 하자~", 어색합니다.

가볍게 맥주나 와인 한잔씩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죠. 하지만 최소 2차, 어느 때는 갈 때까지 가보자 하는 '파이팅 넘치는' 한국 직장인들의 술문화를 고려한다면 '주류판매'라는 자충수를 두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술자리로는 왠지 어색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와인과 맥주를 병째 소비하는 고객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결정을 내림으로써 얻게 되는 것과 잃게 되는 것을 따져보아야 합니다.

"커피 매장에서 술을 팔다니, 스벅 실망이야!"라며 스타벅스를 등지고 다른 브랜드로 떠나게 될 충성심 높은 고객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브랜드다움을 희생하면서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이 크지 않은 상황을 예측해본다면 스타벅스 한국매장에서의 주류판매는 당장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코카콜라가 음료를 판다고 해서 우유를 만들지 않으며 현대자동차가 탈것을 판다고 해서 비행기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브랜드다움(Brandness), 자기다움이야말로 브랜드력(力)을 강화하는 핵심동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것의 가치, 월간조선


혁신을 이유로 주류를 판매하자는 시선도 분명 존재합니다. 변화하는 것이 해결책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변화하지 않는 것이 브랜드의 영속성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사잡지 월간조선의 디자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월간조선은 시사월간지 부분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조선일보 발행 잡지입니다. 다소 촌스러운 표지와 큰 활자로 구성되어 있는 게 특징인데요. 내지 색상도 대부분 흑백입니다.

월간조선이 현 세대의 트랜드에 맞게 세련되고 화려한 레이아웃과 디자인으로 변화를 준다면 브랜드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저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월간조선을 지키는 전략이자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월간조선를 구독하는 사람들은 40세 이후 어르신들이 대부분입니다. 나이가 들면 인간의 시력은 자연스레 나빠지는데 월간조선의 큰 활자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브랜드에 신뢰를 더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보면 변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결같음'이 수십가지 수백가지의 잡지들이 난무하는 매거진 시장에서 월간조선을 오히려 돋보이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더하지 않고 빼는 것의 미덕, 아이팟


애플의 스티브잡스는 아이팟을 만들 당시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즉 누구나 쉽게 원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단순함을 추구했습니다. 개발자들이 시제품을 만들어왔을 때 원하는 노래를 3번 이내 조작으로 찾지 못하면 버럭 화를 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아이팟은 초등학생도 한번만 해보면 왠만한 기능은 모두 익힐 수 있는 간편한 조작과 단순함에서 오는 편리함으로 MP3 플레이어 시장을 꿰찼습니다.

제가 스타벅스코리아의 브랜드메니저라면 주류를 판매해 메뉴를 늘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출이 낮은 음료나 빵, 케익 메뉴를 정리해 커피브랜드의 입지를 더 공공히 할 것 같습니다. "역시 별다방이 콩다방보다는 먹을만 해", "커피는 역시 스타벅스야"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고객들의 입에서 흘러나올 수 있도록 커피의 맛과 메뉴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