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수집 4 김훈 칼럼 <가로수의 힘겨운 봄맞이>
술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분위기가 내게 술을 요구할 때 거부하지 않을 뿐이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술에 금방 취하고 숙취도 오래 간다. 술을 마신 다음 날을 완전히 망쳐버리는 일이 열번쯤 됐을까? 술을 부러 찾지 않게 되었다. 어제는 교보문고에서 삐딱하게 서서 글을 읽고 있었다. 인터넷 신문사 편집부장 채형에게 전화가 왔다. "한 잔 하세" "어디서 볼까요?" 한달 만의 술이었다. 소주를 마시면 내일이 망가진다는 공포감에 맥주를 주문했다. 채형은 진로 소주, 나는 테라 병맥을 잔에 따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시콜콜한 일상을 읊조렸다. 2차는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 앞 노상 탁자였다. 이번엔 캔맥주였다. 채형은 기네스 나는 칭따오를 골랐다. 채형은 나와 닮은 구석이 있다. 취향이다. 문학, 영..
2020.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