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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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으로 혼자
내일 아침이 되면 집 밖을 나설 거야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갈 거야 서울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삼천 원짜리 호두과자를 사고 한 개만 먹을 거야 편의점에서 커피 우유를 사고 승차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갈 거야 마스크를 낀 아주머니에게 참치 꼬마김밥을 달라고 할 거야 아침 식사를 비닐봉지에 넣은 채로 자박자박 걸어갈 거야 기차 안에 앉으면 창가 자리에 앉아 찰칵 사진 찍을 거야 사진이 잘 찍혔는지 보고 마음에 들면 너한테 보내줄 거야 새로 산 중고 책을 왼손에 펼쳐 들고 창밖 풍경과 종이를 번갈아 바라볼 거야 유리창 너머 산과 들판을 보며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을 더듬을 거야 강릉역에 도착하면 우와 강릉이다 속으로 소리치며 피식 웃을 거야 흐릿한 하늘이 나를 안목해변까지 걷도록 안내할 거야..
2020.10.18 -
이병률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 서평
이토록 아름다운 시인이었을 줄이야! 대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중령님이 산다. 중령님의 추천으로 어느 군부대에 온라인홍보 자문을 하러 갔다. 자문을 마치고 중령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병률 작가 이야기가 나왔다. 이병률 산문집 '끌림'을 읽고 있는데 별로 끌리지 않더라고 이야기했다. 중령님은 "40대가 되면 공감이 갈 거예요"라고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40대가 된 지금 다시 읽은 이병률의 글은 가슴으로 읽혔다. 어쩜 그리 좋은지. 난 이병률의 시가 어려운 어휘를 사용하지 않아서 좋다. 쓰이지도 않는 어휘를 나열한 채로 그럴싸해 보이려 작정한 시들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활용해 절절한 시를 엮어낼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는가. 이 시대에 그런 시인이 있기는 한가? 폼 잡지 않..
202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