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4. 19:56ㆍ글쓰기/잡문집
"군의 명예에 먹칠을 했으니 죽어야 한다"
40분 동안 자신을 꾸짖는 상사에게 죄송합니다를 연발한 통일연구원 계약직 신입 이원두 씨는 스스로 이승을 등졌다. 신입사원 신분인데 과중한 업무가 주어진 탓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게 눈에 보여 슬펐다. 나도 첫직장에서 서러워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눈물을 쏟은 적이 있는데.
유튜브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Pg5NDTZUnbc) 너머로 고인 어머니의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멍하니 댓글창을 읽어보니 공감가는 문장들이 여럿 보였다. "입사 2주차가 뭘 완벽하냐", "여기서 잘 못하면 이 분야에서 발 못 붙인다"라는 말들.
계약직 신분이지만 국책연구원에 입사했다고 기뻐했을 고인과 고인 가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차라리 퇴사해
이원두 씨가 내 친동생이었다면 퇴사를 적극 권장했을 것 같다. 우리 부모세대만 하더라도 한번 들어간 직장을 오래 다니는 게 미덕처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부당함을 인내하며 자신의 수명을 갉아먹는 시대가 아니다. 계약직으로 입사했기 때문에 내심 정규직 전환을 생각하고 있었을 이원두 씨의 조직 내 역학관계와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신입 특유의 열정과 군장교 출신의 책임감이 오히려 화가 된 것 같아 더 안타깝다.
폭력의 역사
국책연구원 신입사원이었던 이원두씨가 세상을 떠난지 이틀만에 대전시청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업무과중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유튜브로 생중계하는 공개 업무보고에서 "모범적이어야 할 정부가 이러면 안 된다"고 했는데 세상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왕따, 은따, 업무배제,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주기, 인사 안 받기, 업무 몰아주기(짬처리), 차별대우, 성과 가로채기, 뒷담화하기 등 한국 직장에서는 여전히 얼굴만 달리한 폭력이 대물림되고 있다.
직장내괴롭힘의 모순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에서는 직장내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처벌 규정을 읽어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사용자(대표)가 직접 괴롭힌 경우 최대 1,000만 과태료. 최대 1,000만원이면 10만원만 과태료를 물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장이 자신이 고용한 직원이 마음에 안 들면 죽을만큼 괴롭혀도 괴태료를 1,000만원도 안 낸다.
실제로 직장내괴롭힘을 신고하면 어떻게 될까?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피해자의 상사일 텐데 과연 구제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상사는 주변 지인을 이용해 신고자를 교묘하게 괴롭힐 게 뻔하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도 자신이 신고당할까 두려워 자연스럽게 신고자는 고립되는 게 상식 아닐까? 신고를 해봤자 자기만 손해를 보는 구조인데 이름만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으면 어쩌라는 걸까.
40분
이원두 씨는 마지막 40분 동안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 40분 사이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어떤 표정으로 사과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지 상상이 된다. 신입사원 시절의 나도 화장실 문을 잠그고 몇 분을 울었던 그날 시간이 그렇게 더디게 흘렀으니까.
법은 이제 직장내괴롭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조항 번호도 있고 과태료 액수도 정해져 있다. 제법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 틀이 지켜주지 못하는 40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사무실, 어느 상담실, 어느 화장실 칸에서 흘러가고 있다. 대전시청 공무원의 40분이 있었고 이원두 씨의 40분이 있었다. 괴로움에 흐느끼는 누군가의 40분도 진행중일 테지.
그날 이원두 씨는 마지막까지도 죄송하다고 말하면 이 상황이 끝날 거라고 믿었을 거다. 조금만 더 버티면, 조금만 더 사과하면, 다시 평범한 하루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스물 몇 해를 살아오며 그가 배운 성실함이 그날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고인의 어머니는 아들의 마지막 뒷모습, 마지막 카톡 메시지, 마지막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국책연구원에 붙었다는 소식에 온 가족이 얼마나 기뻐했을지 짐작만 할 뿐이다.
법전에는 조항이 남고 뉴스에는 숫자가 남는다. 하지만 그가 남긴 것은 40분간의 "죄송합니다"와 무너진 한 가족의 일상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꿔야 할 것은 몇 줄짜리 법 조항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눈감지 않는 마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