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2020. 10. 19. 08:07라이프/잡문집

아아- 헌책이 자아내는 정취란...

 

대형서점 브랜드로는 알라딘, YES24에서 온·오프라인 헌책방을 운영한다. 주로 알라딘 중고매장을 이용하며 가끔 신촌 글벗서점에 가서 책장을 뒤진다. 헌책 특유의 낡은 종이에서는 30년 전의 냄새가 난다.

 

오늘은 알라딘 중고서점 신촌점까지 걸었다. 한 시간 조금 덜 걸렸다. 서점에 도착했을 즈음엔 파릇파릇한 대학생들도 보였다. 나이는 속일 수 없나 보다. 젊음이 뿜어내는 생생한 눈빛과 걸음걸이와 웃음소리는 어쩜 그리 싱그러운지. 알라딘 중고서점 신촌점에 도착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갔더니 상상했던 그대로의 헌책방이 눈앞에 펼쳐졌다. 합정점보다 좁았으나 훨씬 헌책방다운 모습이었다.

 

산문 코너에 갔더니 김훈 작가 산문집 '연필로 쓰기'가 꽂혀 있었다. 꺼내서 읽어보는데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읽을까 말까 고민될 때는 내려둔다. 책장 반대편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이 보였다. 세련되지 않은 옛 책의 활자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키의 여행법'을 들고 목차와 관심이 가는 글을 읽어봤다. 국물이 맑은 잔치국수를 먹듯이 하루키의 글이 담백하고 술술 읽혔다. 그렇게 하루키 산문집 세 권을 결제했다. 한 권에 삼천 원에서 사천 원에 샀으니 새 책 한 권 값으로 세 권의 책을 구한 셈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가격이 저렴한 것도 좋지만 헌책의 진짜 매력은 책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세월의 흔적이다. 어떤 책에는 이전 주인이 형광펜과 볼펜으로 그어놓은 줄이 있는가 하면 어떤 책에는 쓰지 않은 티슈가 꽂혀 있다. 자연스럽게 빛에 바래 누렇게 된 종이는 헌책에 운치를 더한다.

 

오늘 산 헌책 '하루키의 여행법'은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1999년에 인쇄된 책이다. 요즘 나오는 책에 비해 활자가 투박하고 서체도 후줄근하지만 몹시 정감이 간다. 중학교 시절 그리운 친구가 떠오르는 디자인이라고 할까.

 

헌책에서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흔적을 새로이 느낄 수 있다.

 

당신의 숨결과 손길이 책장에 남아 내게로 온다.

 

그렇게 연인처럼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