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13. 22:54ㆍ라이프/책&작가 평론
"선배님, 요즘 글쓰기 훈련으로 베껴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필사를 할만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다면 추천 좀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소설을 해외 출판사에 팔았고 지금도 소설을 파는 일을 하고 있는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경희대 도정일 교수를 추천했다. 도정일 교수는 자신이 경희대학교에 재학중일 때에도 글을 잘 쓰기로 유명했다고 했다.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도정일 교수를 검색했다. 인물정보에서 네이버캐스트를 읽었다. '지식을 실천으로 옮기는 인문학자'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지식인의 서재처럼 도정일 교수의 인터뷰를 동영상과 글로 볼 수 있었다. 본문의 글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건 도정일 교수의 수업을 직접 들었던 제자들이 남겨놓은 댓글들이었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만날 수 있을 법한 진정한 스승을 향한 고마움의 메시지들이었다.
신문매체에 기고한 도정일 교수의 글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한겨레 홈페이지에서 도정일 교수가 수년 전부터 지금까지 기고한 칼럼들을 읽었다. 사회를 품고 아우르는 시선이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인문학의 부재가 초래하는 사회의 야만성,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관한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인문대 출신은 취업이 안돼
요즘 취업시장에서 가장 인기 없는 취업준비생은 국문과, 영문과, 철학과 등 인문학 전공자들이라고 한다. 회사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문학 전공 졸업생은 공대 졸업자에 비해 취업에서 불리하다. 대기업 인사팀 18년차의 조언이라는 글을 보면 문과 졸업생들이 현 시대의 취업시장에서 얼마나 찬밥신세인지 알 수 있다. 대기업 인사팀에서 18년을 근무하고 지금은 자영업을 하고 있다고 밝힌 글쓴이는 "공대생은 지방대생도 허다하고 들어보지 못한 대학 출신도 많지만 문과 졸업생은 커트라인 최하가 서강대"라고 이야기한다. 문과는 취업과는 거리가 있으며 인서울 공대나 지방 국립대 공대가 백프로 취업이 더 수월하다고 단언한다.
도정일 교수는 "몇 년 전에 한 대학생이 어느 대학에서 "나는 대학을 다녀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다. 대학에서의 배움이 사라졌다. 가치와 의미를 대학에서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어요.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더라도 그걸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곳이 대학인데 말이죠. 대학에서는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지 않고, 젊은 세대들은 자기 삶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으니 허망한 게 되어버린 거예요."라고 했다.
도정일 교수의 글을 접하고 우리 사회가 비정하고 불행해진 근본 이유를 알게 됐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문학을 경시한 교육이 대학을, 가정을,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쓰잘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인문학자 도정일 교수의 과거를 쫓아가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도정일 교수가 약 20여 년 간 신문, 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놓은 산문집이다. 글 끄트머리에는 어느 매체에 언제 소개된 글인지 매체 이름과 날짜가 적혀있다. "쓰잘데없어 보이는 것들, 시장에 내놔봐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 돈 안 되고 번쩍거리지 않고 무용하다는 이유로 시궁창에 버려진 것들의 목록을 만들고 기억해야 할 시간이 아닌가?" 도정일 교수가 서문에서 밝힌 집필의 이유다.
나는 블로그 독자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우리가 잃어버린 진짜 소중한 것들을 상기할 수 있다. 쓰잘데없어 보이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들을 되짚는 행위는 자신의 교양을 쌓는 일에도 도움이 된다. 사회를 아우르는 따뜻한 글을 써내는 인문학자의 글을 베껴쓰며 글쓰기 공부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문학자 도정일 추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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