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23. 10:22ㆍ라이프/책&작가 평론
내가 좋아하는 인물의 독서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곳, 책을 추천받을 때 들르면 좋은 곳, 유명인사들의 독서법을 구경할 수 있는 곳. 고맙기만한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http://navercast.naver.com/list.nhn?cid=254&category_id=254)다. 교수, 서평가, 시인, 의사, 소설가, 화가, 만화가, 번역가, 학자, 피아니스트, 예능PD 등 다양한 직업군의 장인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서재를 들여다볼 수 있다. 내게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는 북셀렉션샵이다. 특히 내 인생의 책 영역에서 소개되는 책과 서평은 책을 사는 데 큰 영향을 준다. 글쓰기에 도움이 될만한, 인상깊었던 지식인의 인터뷰 대목을 발췌했다.
소설가 김연수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소설도 결국에는 어떤 인생을 좀 닮아 있어요. 그래서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소설 쓰기에 대해서도 좀 알지만, 인생에 대해서도 조금씩 조금씩 알게 돼요. 더군다나 소설은 어떤 사람의 삶이나 어떤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더군다나 인생에 대해서 숙고할 일이 굉장히 많아진다는 거죠. 그래서 뭐 물론 처음에는 소설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그다음에 캐릭터를 어떻게 잡고 플롯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었는데 궁극적으로는 소설을 쓰는 과정이라는 것은 첫 번째는 자기의, 소설가 자신의 인생을 이해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타인들에 대한 도저히 알 수 없는 타인들의 인생을 이해하는 어떤 한 방법이 된다.'라는 걸 이제 독자들한테 설명해 주고 싶었고요.
그리고 나서는 궁극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걸 물어봐요. 왜 소설을 읽어야 되는지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그래서 '나이가 어렸을 때는 재미가 있으니까 읽었다.'라고 대답을 하고요. '나이가 조금 든 뒤에는 그 아무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소설은 읽지 않는다.' 이런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소설가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그 소설을 읽는 행위가 뭐 많이 읽으면 좋겠죠. 근데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에 '소설을 많이 읽어야 된다'라고 말을 하는 게 아니고 다른 어떤 이유가 있단 말이죠. 그게 제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어떤 일, 그 얘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소설을 계속 읽는다는 거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삶을 공감하기 위해서 그런데 이 공감은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방법으로는 '이 소설이 주는 어떤 공감을 주기가 좀 쉽진 않다.'라는 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작가 알랭 드 보통 "여행을 할 때는 책을 읽지 말고 생각을 하라"
저는 주로 집에서 독서를 해요. 여행을 할 때는 책을 읽기보다는 창 밖을 통해 세상을 보려고 하죠. 낯선 곳은 사람을 매우 창의적으로 만들어 주니까요. 익숙해진 습관으로부터 벗어나게끔 하거든요. 이런 점은 작가에게 정말 멋진 일이죠. 만약 항상 똑같은 곳에 있다면 생각 또한 틀을 벗어나지 못할 거에요. 평소의 환경에서 벗어나면 진정한 영감이 떠오르게 되죠.
저의 창의적인 생각 중 일부는 호텔방에서 시차적응이 안되어 뒤척일 때, 새벽 3시쯤 떠오른 것들이었어요. 잠에 들 수가 없어서 호텔방에 비치된 노트에 책에 대한 영감, 미래에 대한 생각 같은 것을 끄적거렸죠. 대개 그렇게 떠오른 생각은 매우 창의적이죠. 여러분들도 여행을 하실 때는 읽지 마시고 생각을 하세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고독은 글쓰기의 원동력이다"
제가 글을 쓰도록 만든 것은 고독이에요. 저는 혼자일 때 책을 읽었고, 혼자일 때 글을 썼어요. 아마도 재능은 이미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이런 상황들이 저의 잠재된 재능을 깨웠던 것 같아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던 이유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였어요. 저는 지루함이 두려웠어요. 또 제 머릿속에 있는 인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고도 싶었고요. 그 때문에 글을 썼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모든 사람들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지 사람들은 자신이 글을 잘 쓰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어떻게 평가를 받나 하는 두려움이 그것을 가로막을 뿐이죠. 또 하나, 완벽한 책을 써내고 싶어하는 욕심도 글을 쓰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최면을 걸어 “당신은 글을 쓸 수 있고, 당신은 재능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을 거예요.
철학자 강신주 "서재는 전쟁터다"
제 서재는 전쟁터예요. 조그만 사적인 공간이지만 지저분해요. 그래서 사실 난도 키우고 이러시는 분들이 부러워요. 전쟁을 할 때는, 여기 저기서 탄환 구하고 뭘 쌓아 놓고 해야 되거든요. 서재가 그런 공간이에요. 글이 완성되는 그 순간부터는 적의 시체 위에서 담배 피우는 느낌 같이 휴식의 공간이기도 해요. 독자들은 잘 모르실 거예요. 서재라고 하면 뭔가 품위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품위가 아니라 펜을 가지고 사유를 하고, 펜과 싸우는 사람이에요. 누군가를 비평하고 논평하는 사람이라 아주 날카롭게 싸우죠. 이기는 순간에만 쉴 수 있는 공간, 그렇게 생각해요.
소설가 김영하 "책이 작가를 만든다"
작가가 되는 데 책은 거의 100%의 역할을 하죠. 오직 책만이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듭니다. 경험도 아니고, 주변 사람도 아니고 정말 책만이 온전하게 작가를 만든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모든 작가는 독자였죠. 작가에서 출발해서 독자가 되는 사람은 없어요. 제가 우리나라의 동료 작가들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작가들에게도 물어봤는데 비슷한 과정을 거쳐요. 처음에는 특정한 소설, 특정한 작가의 열렬한 독자가 되죠. 그것을 읽다가 그보다 더 나은 책들을 읽게 됩니다.
어느 정도 읽다가 보면, ‘나도 이런 것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그런 때가 있어요. 그래서 자기 안에 쓰고 싶어 하는 내용과 자기가 읽어 온 책들이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거죠. 그게 대부분 작가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작가들이 쓰는 소설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에요. 어떤 의미에서 작가들은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해서 그것을 다시 쓰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기가 읽었으나 100% 동의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응답을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어떤 책들은 질문을 던지잖아요.
시인 신달자 "가장 좋은 책 읽기는 여러 번 읽는 것이다"
가장 좋은 책 읽기는 한 권을 여러 번 읽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방법이에요. 처음에는 눈으로 이것 저것 보는 거예요. 책 전체를. 소제목은 무엇이 있나, 책은 어떻게 되어 있나, 이런 것을 먼저 눈으로 보고, 그리고 정독을 합니다. 정독을 하고 나면, 저는 그 책을 읽은 사람과 꼭 이야기를 했어요. <어린 왕자> 읽었지, 어떻게 생각해? 왜 이렇게 됐을까? 이렇게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저 혼자 그것을 가지고 글을 써 봤었습니다. 그러면 그 책을 온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요.
광고인 박웅현 "급변하는 시대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본질적인 컨텐츠"
저는 말하자면 테크놀로지 측면에선 리타드(retard)예요. 그러니까 지진아예요. 테크놀로지를 빨리 따라가지 못하고 그리고 그 시대의 흐름에 적응이 빠른 편이 아니에요. 근데 제가 광고 업계에서 살아남아 가고 있고 살아남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주목하는 건 미디어가 그렇게 급변하고 눈이 많아지고 스크린이 많아지고 TV를 안 보고 이제는 포탈 검색을 하고 이제는 모바일로 바뀌었고 이제는 또 뭐가 나올 것이고 이 모든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는 본질은 있어요. 저는 그걸 잡는 게 핵심 같아요. 그러니까 미디어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서 거기에 맞추려고 하다 보면 저는 그 능력 못 따라가거든요? 근데 아무리 미디어가 변해도 사람의 생각. 그러니까 이거죠. 쉽게 말씀드려서 우리는 태어나서 성장을 하고 사랑을 하고 힘들어하고 가끔 인생을 즐기고 나이가 들어가다가 병이 들어서 죽는다. 이거는 뭐 스크린이 바뀐다고 변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이 속에서 태어나서 살아가는 과정. 사랑을 하면서 겪게 되는 어떤 희열. 고통을 받으면서 느끼는 어떤 좌절. 그러고 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 이 흐름은 변하질 않거든요. 이걸 잡는 게 저는 핵심 같아요. 이거를 잡아서 그 메시지를 어떤 스크린에 넣느냐를 봐야지 스크린의 변화를 따라가려 하면 저 같은 사람은 살아나갈 방법이 없고요. 그리고 오히려 저는 그 '미디어의 변화라는 부수적인 것이 너무 중심부로 오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이제 이 얘기를 하는 거죠. 미디어가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본질적인 컨텐츠다. 이 얘기를 하는데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방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