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사과 이론

2013. 9. 24. 22:59라이프/잡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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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사과 이론


호주를 여행하면서 도심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Sorry!"에 당황했다. 앞에서 오는 사람과 가까이만 가도 "Sorry!"라고 실례했다는 표현을 했다.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호주에서 귀국하던 날, "호주는 정말 선진국이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공항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오더니 내 앞으로 새치기를 했다. 나는 줄의 맨 앞에 서 있었다. 줄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새치기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너무도 위풍당당했다. "여기서 떠들어봤자 스마트폰 도촬의 주연이 될 것이고, 결국 유튜브 스타가 될 것이 뻔하다"
는 생각에 화를 삭혔다. "미안해요. 총각. 내가 다리가 좀 안좋아서 먼저 탈 수 있을까?"라고 한마디만 했어도 흔쾌히 응했을 거다. 하기야 길거리나 버스에서 어깨를 부딪치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게 우리 어른들 아닌가. 사진 Butupa


沙果(사과)는 있는데 謝過(사과)는 없어


"미안합니다"라는 사과의 말은 TV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귀한 말이 됐다.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던지 비리를 저질러 검찰조사를 받으러 가거나, 조사를 마친 후의 기업 CEO들을 보자. 휠체어를 타고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한다. "미안합니다"라고 하거나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사과할 줄 모른다. 아줌마에서 기업 CEO까지 사과를 할 줄 모른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 이런 모습을 본 국민들에게 사과나 양심을 기대하기 힘든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치인도 다르지 않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화는 유명하다.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대해서는 아직 감정이 안 좋은가 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라고 했다. 그러니까 나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든 말든 당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라는 게 각하 말씀의 요지인 거다. 대통령 시절에도 얼마인지 가늠하기도 힘들만큼 거액의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퇴임 후에도 현직 대통령 연봉의 70%에 해당하는 돈을 연금으로 받고 교통비, 통신비, 사무실, 본인 및 가족의 병원 진료비, 비서관 3명과 운전기사 1명을 지원받으며 호의호식해왔다.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기 전까지 이 모든 혜택의 수혜자였으며 형 확정 후에도 매년 4억 5천만원에 달하는 경호와 경비를 지원받고 살아왔다. 양심없는 자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사회,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사과할 줄 모르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들


1994년 지존파 사건의 피의자 두목 김기환은 "전두환, 노태우는 무죄인데 나는 왜 유죄야"라고 말했다. 피해자를 납치해 강간, 살해하고 인육을 먹는 등 극악무도한 범죄를 자행한 무리들은 죄책감에 눈물을 보이기는 커녕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경찰에 붙잡히고 나서 "더 못 죽인 게 한이다"라고 해 뉴스를 보는 이들을 망연자실케 했다. 이들 사이코패스들에게는 사과하는 법이 없고 양심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범죄를 저질렀으면 피해자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사과할 줄 모르고 자기만 아는 사람들이 불만이 커지면 범죄자가 된다. 사과의 부재가 부르는 나비효과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사과하는 법 가르쳐야


"한 명만 낳아 편하게 살자"는 핵가족 시대의 자녀들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의 집중세례를 받는다. 부모님 사랑이 고마운 줄 알고 제대로 성장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부모님의 사랑이 지나쳐 예의범절을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자녀들이 많아지고 있고 이들이 학교와 사회에서 말썽을 일으킨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서 선생님에게 대들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들의 동영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번은 체벌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가 건장한 남성들을 데리고 학교로 가 선생님을 무릎 꿇게 한 일도 있었다. 자기 자식만 아는 부모의 잘못된 사랑이 오히려 자식들을 망쳐놓고 있다.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대들거나 잘못을 해서 혼쭐이 나더라도 부모님한테 말하면 되고, 휴대폰으로 찍어서 경찰에 신고하면 되는 세상에서 선생의 교권은 설 자리를 잃은지 오래다. 이런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사과하는 방법을 가르칠 리는 만무하다. 잘못하면 꾸지람을 하고 사과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가 잘못해서 선생님한테 맞고 오면 선생님한테 죄송하다고 무릎을 꿇는 게 진짜 자식을 위하는 부모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올바른 사과법을 가르쳐야 한다. 대입 수능시험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사과하는 법 등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 소양마저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건 선생이기를 포기한 것과 다름 없는 일이다. 청소년들에게 하루에 5분만이라도 양심과 사과하는 법에 대해 가르친다면 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때쯤 되면 미안해 할 줄 아는 양심있는 성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선생은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썩은 사과 하나가 싱싱한 사과들까지 썩게 만드는 '썩은 사과 이론'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