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이 한겨레 기자 시절 쓴 거리의 칼럼

2013. 8. 30. 06:50라이프/책&작가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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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펜은 그저, 무심하게 자신의 몸을 종이에 기대어 흔적을 남기는 것에 머물지 않고 노래를 한다. 이 노래는 독자들의 가슴에 울림으로 다가오는데, 그 울림이란 게 작고 보잘것 없는 게 결코 아니어서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그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정작 소설 밖에 있었다. 그가 한겨레신문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 가까이에서 그를 보아온 권태호 기자가 쓴 글이 있는데, 김훈이 한겨레를 떠난 이유 1, 2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개의 글을 읽는 시간 속에서 난 어느새 그의 팬이 되어가고 있었다.



밥벌이의 위대함

네이버 캐스트 인터뷰에서는 삶과 글쓰기에 대한 그의 가치관과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가볍지 아니하고,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수십년간 기자로 생활하며 보고 듣고 생각한 장면들이 김훈의 펜에 녹아있어서 그럴까? 그가 써 내려간 글자 하나하나가 가지는 호소력의 강도는 나로써는 감히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네이버 캐스트 인터뷰 내용 중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미군부대에서 초콜렛을 얻어먹은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렇게 우리는 가난했어요. 하지만 그 가난은 그 시대 전체의 가난이었어요. 나는 초콜릿을 얻어먹은 게 전혀 수치스럽지 않아요. 조그마한 애가 먹을 게 없으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오히려 나는 그 당시 장면을 떠올리면, 초콜릿이 날아오는 방향에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애들의 그 발랄한 생명력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에요. 다만, 그걸 이쪽저쪽으로 던져주던 자가 악한 자죠. 예절을 잃은 거예요. 물건을 남한테 줄 때의 예절을 잃은 거죠. 나는 다만 배가 고팠을 뿐이지, 그것이 무슨 치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라고 했다.

소설가 김훈에게 세상을 들여다보는 행위,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면 이미지가 펼쳐진다 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중에,

“물론 나는 책을 아주 많이 읽은 사람입니다. 아마 쓸데없이 많이 읽은 사람일 거예요. 하지만 그것을 추호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내 친구들 중에 평생 책 한 권도 안 읽은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지도 않아요. 그 사람들은 밥 벌어먹고 살기가 너무 바빠서 책을 안 읽은 거예요. 나는 그 사람들 보고 책 읽으라는 말은 안 해요. 다만 그 밥 버는 일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는 하지요.” 라는 부분도 참 좋았다.

흔히 누군가 과장된 말을 할 때에 우리는 “소설 쓰고 있네”라고 이야기 한다. 소설의 소재는 그만큼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상상 속의 무엇만을 좇는 것이라는 잘못된 환상이 이런 표현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평생 책 한 권도 안 읽은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지도 않아요. 그 사람들은 밥 벌어먹고 살기가 너무 바빠서 책을 안 읽은 거에요.”라는 인터뷰 속 말처럼 김훈의 글은 철저히 현실적이고, 사실을 토양 삼은 글이라서인지 가벼이 읽어 넘기기에는 아깝다. 그의 글에는 기자로 현장을 뛰어다니며 흘린 그의 땀과 땀냄새가 배어있다.


문장귀(鬼)가 남긴 31편의 역작, 거리의 칼럼

한겨레신문 기자 시절 그는 거리의 칼럼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면에 31편의 글을 남겼다. ‘김훈이 한겨레를 떠난 이유’에서 권태호 기자는 “김훈의 ‘거리의 컬럼’의 특징은 현장성, 간결성, 함축성, 그리고 간접성 등입니다. 저는 많은 기자들이 이중 많은 부분을 본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라파엘의 집’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 김훈은 기사에서 호소하거나 촉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옮겨줄 뿐입니다. 그러나 그 관조적 전달은 백마디 호소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라고 이야기 하며 김훈의 글솜씨를 추켜세웠다.

좋은 노래는 지친 우리를 달래기도 하고, 마음 속 깊은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김훈의 글은 마치 자꾸 들어도 질리지 않는 발라드 노래 같다.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이며 축복이다. 겨우 손바닥만한 펜 끝에서 흘러나온 글과 문장에 깊고 웅장한 울림과 여운이 있다. 동시대에 살면서 그의 글을 라이브로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운아다.

김훈이 한겨레를 떠난 이유.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