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12. 00:15ㆍ라이프/이것저것 리뷰
USB 메모리 스틱과 괴짜 MIT 졸업생 드류 휴스턴
드롭박스를 만든 드류 휴스턴을 한마디로 정의하기에 Nerd(괴짜, 덕후) 보다 좋은 단어도 없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던 휴스턴은 열네살 무렵 온라인 게임 베타테스트에 가입한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그는 게임을 좋아하는 여느 아이들과 달리 보안상의 네트워크 결함을 발견하여 일러바친다. 이 괴짜 소년의 발칙한 행각을 발견한 게임회사가 휴스턴을 네트워크 프로그래머로 채용한 일화는 유명하다.
MIT(메사추세츠에 있는 지잡대)에 입학한 휴스턴은 코드 작업을 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정도로 컴퓨터에 몰입했다. 한번은 뉴욕에 갈 일이 생겼다. 휴스턴은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가는 네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코드 작업을 하려고 했으나 USB 메모리 스틱을 노트북에 꼽아둔 채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좌절했다. 바로 이때 개인의 파일을 웹에 싱크하는 기술을 만들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깜빡 잊고 두고 온 USB 메모리 스틱이 지금의 드롭박스가 탄생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파트너 아라시 페르도시와의 운명적인 만남
당신의 기업을 시작하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벤쳐 캐피털리스트 가이 가와사키는 기업가의 컨퍼런스 TIECON 2006, The Art of the Start 강연에서 “The Concept of Solo Enterpreneur is vastly overrated."(솔로 기업가라는 개념은 과대평가되어 있다.)라며 솔로 기업가를 향한 환상에 대해 꼬집었다. 혼자서 큰 일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스티브 잡스 곁에는 스티브 워즈니엑이라는 유능한 엔지니어가 있었고 빌게이츠 곁에는 스티브 발머라는 걸출한 경영자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드롭박스 역시 설립자 드류 휴스턴 곁에는 아라시 페르도시가 있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소개 받은 페르도시는 MIT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이란인 피난민의 독자였다. 휴스턴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졸업까지 6개월을 남긴 시점에 학업을 포기하고 드롭박스에 합류한다.
스티브 잡스 “드롭박스는 기능(Feature)이지 제품(Product)은 아니다”
2009년 말 애플 CEO 스티브 잡스는 드류 휴스턴과 아라시 페르도시를 자신의 사무실로 초대했다. 잡스가 준비한 게 있느냐고 묻자 휴스턴은 노트북을 꺼내 데모를 보여주려 했다. 스티브 잡스는 특유의 썩소를 지으며 넌지시 말했다. “자네들이 무얼하고 있는지 알고 있네.”
잡스는 드롭박스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고 10억불에 가까운 거액을 제시하며 인수를 제안했다. 그러나 휴스턴은 드롭박스를 더 큰 회사로 만들 계획을 내비추며 잡스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드롭박스는 2011년에만 2억4천만불의 매출을 올리며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온 세상에 증명했다. 만일 애플이 드롭박스를 인수했다면 iCloud가 아닌 iBox가 나오지 않았을까?
고객을 영업사원으로 만든 추천 시스템
대부분의 직원이 엔지니어인 드롭박스의 고민은 우수한 마케터를 구하는 일이었다. 둘다 마케팅과는 거리가 먼 순수 엔지니어들이었기 때문이다. 구글 애드워즈를 통해 광고를 하려고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값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광고를 하는 대신 충성도 높은 고객을 영업사원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을 시도했다. 드롭박스 유저의 추천을 통해 가입하면 추천을 한 유저에게 250메가바이트의 저장공간을 추가 제공했다. 드롭박스 신규가입자 4분의 1이 여전히 이 같은 추천 방식으로 가입하고 있다.
슬로건 Simplify Your Life가 전하는 메시지
드롭박스는 단순히 파일을 저장하고 내려받는 서비스가 아닌 협업 서비스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파일을 올리고 내려 받거나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는 등의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Simplify)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폴더를 공유하며 컴퓨터, 휴대폰, 태블릿 PC 등 다양한 기기를 통해 파일을 열어보고 편집할 수 있다.
S기업의 K대리는 서울 사무소에서 팀 프로젝트용 워드 파일을 작업중이다. 프랑스 파리 지사에 있는 B팀장은 실시간으로 K대리가 작업중인 팀 프로젝트 파일을 열어보고 수정한다. 서울 사무소의 K대리는 자신이 작업을 마친 파일에는 (K대리) 라고 표시해 둔다. 다른 팀에 있지만 협조 차원에서 같이 일하는 L대리 역시 파일을 열어보며 내용을 추가한다. L대리는 자신이 더한 내용 끝에 (L대리) 라고 표시해 두고 더하고 싶은 이미지를 폴더에 넣어둔다. B팀장은 같은 폴더를 공유하며 파일에 추가된 내용과 이미지를 반영하며 실시간으로 보고서를 다듬는다. 싱크(실시간 동기화)된 폴더를 통해 B팀장은 언제든 K대리와 L대리가 보충한 내용을 확인하고 추가로 내용을 수정하고 파일 작업을 마무리한다. 이메일로 서로 파일을 주고 받던 때와 달리 실시간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서 업무효율성 측면에서도 이득이 됐다. 또 컴퓨터, 휴대폰, 태블릿 PC의 드롭박스 계정에 파일이 싱크(동기화) 되기 때문에 파일을 컴퓨터에서 휴대폰으로 옮기거나 태블릿 PC로 옮길 필요도 없다.
물론 이메일로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도 있고 USB 메모리 스틱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고전적인 방법도 있다. 이메일로 데이터를 주고 받는 경우 상대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야한다. 또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 서비스 사이트에 접속하여 메시지를 입력하는 등 귀찮은 작업들이 뒤따른다. USB 메모리 스틱은 어떨까? USB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전달하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물리적인 오류가 생겼을 때에는 USB 메모리 스틱 안에 있던 데이터를 몽땅 잃게 될 수도 있다. Simplify Your Life라는 타이틀대로 드롭박스는 이 같은 불편함을 말끔히 해소할 뿐더러 우리의 일, 나아가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