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2. 14:06ㆍ글쓰기/산문
최근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국가기관의 업무보고를 보면서 정말 재밌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나 영화보다 재밌다는 반응도 있었다. 대통령 업무보고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대통령은 국가기관장으로부터 직접 업무보고를 받을 뿐더러 해당 기관에 속한 공공기관장의 업무보고까지 받는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국책연구기관은 업무보고를 하지 않는 걸까?
국책연구기관 직원이거나 공공기관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국책연구기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떨어져 있는 조직이다 보니 그럭저럭 운영되기도 쉬운, 방만 경영이 쉬운 조직이라는 의미도 된다.
회사 업무 때문에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인사) 소속 국책연구기관에 여러차례 출입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국토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국직업능력연구원, 한국환경연구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일 때문에 자주 방문했고 KDI국제정책대학원대학교는 직원으로 있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정부출연연구기관은 대체로 널널한 업무 분위기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특성상 박사급 연구원이 메인이기 때문에 지원인력에 속하는 학/석사 행정원은 무척 널널해 보였다. 산업통상자원부(지금은 산업통상부)에도 주기적으로 방문했는데 산업통상부 공무원에 비하면 정출연은 정말 편한 분위기다. 사무실을 지나가면서 보더라도 엄청난 열기 속에서 바쁘게 일하는 젊은 사무관들을 보면 뭉클한 기분 마저 들었다. 물론 행정고시 출신 엘리트 공무원과 그 조직을 서포트 하는 성격의 공공기관 직원을 비교하는 건 무리이지만 비슷한 월급을 받거나 공무원보다 더 나은 처우를 받는 공공기관 직원이 더 널널한 일을 하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

국무조정실과 국회의 감사 또는 그에 준하는 감시가 있긴 하지만 일반 공공기관에 비해 국책연구기관은 대중의 시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가 R&D의 중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예산도 전 정부 대비 9조원 가량 대폭 상향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국민에게 좀 더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대중의 시선을 피해 그들만의 리그처럼 운영되며 세금을 낭비하는 일을 막고 이 거대한 예산이 국가 발전에 제대로 쓰이는지 국민과 대통령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국책연구원의 널널한 분위기와 방만 경영은 결국 관심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대통령(대국민) 업무보고라는 가장 확실한 공개야 말로 국책연구기관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자발적인 혁신을 촉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물론 "우리 연구원은 논문 몇편을 썼습니다"같은 양적 지표의 단순 나열이어서는 안 되며 질적 성과가 보고 내용이어야 한다.
저출산(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실업률(한국노동연구원), 기후변화(한국환경연구원) 등 국가적 문제 해결에 어떻게 기여했으며 연구한 핵심 기술이 산업에 실제로 어떻게 이전됐고 어떤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는지 등 성과 중심의 보고가 이뤄져야 한다.
국책연구기관의 업무보고는 요식 행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중앙부처 공무원 대비 널널한 업무 분위기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9조원 이상 증액된 R&D 예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국민 신뢰까지 얻을 수 있는 기회이자 수단이다.
대통령과 국민 앞에서 떳떳하게 성과로 화답하는 국책연구기관장의 모습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