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21. 14:34ㆍ라이프/소탈한 여행기
세종에 이사온지 어언 5개월이 지났다. 조용한 거리, 모범생 같이 생긴 사람들, 가끔 거리를 시끄럽게 하는 딸배들, 눈만 돌리면 보이는 산과 들판, 멋진 호수공원까지. 세종은 참 살기 좋은 곳이다. 그리고 참 심심한 곳이다. 백화점이 없고 번화가 이외에는 사람이 거의 없는 깡시골 느낌이 난다. 세종에서 제일 좋았던 곳이 세종호수공원이다. 차타고 20분 넘게 가야 하지만 도심이 보이는 탁트인 생김새가 정말 좋다.
서울에 살 때는 지인들과 관악산, 북한산, 도봉산 등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산도 가고 동네에서 가까운 서대문 안산도 자주 갔는데 세종에 온 뒤로는 등산을 할 기회가 없었다.
등산에 딱히 소질이 없기 때문에 만만한 코스의 등산로를 찾다가 전월산 등산 코스를 발견해서 가보기로 했다.
■무궁화테마공원 https://naver.me/G14so4HC
무궁화테마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등산로로 진입하면 된다. 내 차는 숨겼지롱.
주차장에서 고개를 돌리면 이렇게 생긴 곳이 보인다. 전월산 등산로 210m라고 적혀 있다. 고고!
오오! 걷다 보니 이쁜 공원이 보인다.
전월산 정상 푯말이 보이고 이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된다.
얼굴 탈까봐 바라클라바 쓰고 모자 쓰고 아주 중무장을 하고 갔더랬다.
오후 3시 35분이었는데 말 그대로 뙤악볕이 내리쬐는 날씨였다. 세종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던 것으로 기억..
그린 그린한 숲길은 언제나 옳다. 한국에는 곰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웃나라 일본만 보더라도 수시로 등산객이 곰에게 습격을 당하고 있다.
생명이 느껴지는 숲길.. 어릴 땐 몰랐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자연이 무서우면서 좋아진다.
등산로 중간중간 푯말이 있어서 등산하기 참 좋았다.
요즘 운동을 거의 안 했고 산책도 띄엄띄엄 할 정도로 몸관리를 안 하다 보니 10분 정도 올라갔을 때부터 숨이 차기 시작했다. 국민체력 100 1등급을 받은지 1년 지났는데 이렇게 몸이 망가진 건가? 근무 패턴의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주륵..
전월산 등산로는 경사로와 평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어 초심자도 부담없이 오르기 좋아보였다. 는 개뿔.. 평소에 운동 안 하거나 등산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버거울 수 있다.
벤치가 보여서 잠깐 쉬었다가 올라가 보기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벌레 우는 소리가 참 반갑더라. 요즘 유튜브에서 산사, 빗소리 ASMR 자주 듣는데 확실히 생중계로 듣는 말은 또 틀리더라.
전월산 정상 도대체 언제 나오냐.. 맨날 곧 나올 것처럼 희망고문만 하는 저 푯말들..
너무 더워서 그런지 일요일 오후였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거의 없었다. 너댓살로 보이는 딸 손잡고 아빠 엄마랑 올라오는 커플, 어느 아저씨, 아줌마를 본 게 전부였다.
갑분경사로? 험한 길이 갑자기 나와서 당황했다.
제발... 희망고문은 이제 그만... 이러다 다 죽어~
안전사고 위험 출입금지 안내판을 보고 멈칫했다. 분명히 저기서 인스타용 사진 찍다가 추락한 사람이 있었겠지..ㅎ.ㅎ;
와우 세종시가 훤히 보이는 뷰맛집에서 잠시 휴식..
드뎌 정상에 도착했다. 표지석에 왜 아무 글씨도 안 써 있지? -_-;
표지석 반대쪽 코스로 올라와서 안 보였던 것이었다. 날도 더운데 땀도 많이 나고 벌레는 또 왜 그리 많은지.. 바라클라바 안쓰고 갔으면 입이랑 코에 꽤 들어 갔을 것 같다.
정상에서 사진 한장 찍는 게 정석인데 날이 더우니 셀카는 패스.. 얼른 내려가자는 생각 뿐이 안 들더라.
전월산 전망대 안내판도 있다. 아, 네.. 잘 봤습니다.
올라왔던 길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어서 집에 가서 샤워해야지 라는 생각, 엉덩이까지 땀이 차서 자동차 시트에 젖겠다는 생각, 목마르다는 생각 뿐이었다. 여름 등산에 물은 꼭 챙기자!
중간 중간 사진 찍고, 벤치에 앉아 쉬고 했는데 40분 정도 걸렸다. 등산을 즐기는 성인이라면 20분~30분 사이에 충분히 오를 수 있을만큼 짧고 부담없는 코스라고 보여졌다.
아무 생각 없이 내려오다 보니 이상한 길로 빠져서 이러다 미아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생존 게임, 야생 관련 유튜브 콘텐츠를 즐겨 보는데 역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컸다. 유튜브 사냥 동영상 보면서 상상할 때는 멧돼지도 니킥으로 때려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 상황에서 멧돼지를 만나면 싸우기는 커녕 도망갈 체력도 남지 않았을테니 여러모로 서글픈 상황이 연출될 뻔 했다. ㅡoㅡ; ㅋㅋ
등산로도 아니고 그냥 풀밭을 걸어 나오다보니 이런 곳으로 나왔고 아까 차를 주차해둔 곳까지 5분이면 걸어갈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뿔싸! 도보로 29분 걸린댄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전월산 정상 찍고 내려올 때 나처럼 헤매지 않도록 조심하자.
어차피 산책도 할 겸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공장이 눈에 들어와서 놀랐다. 마치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공장이라니... 알고보니 한전 발전소였다. ㄷㄷ
걸어가다 만난 용아산업 폐공장의 모습.. 여기가 체르노빌인가 세종인가?
20분 정도 걷다보니 무궁화공원 안내판이 보였다. 어찌나 기쁜지 ㅠㅠ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 등산을 시작한 진입로가 보였을 때는 완전히 마음이 놓였고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총평을 남기면서 글을 마친다.
총평 - 전월산은 성인 남성 기준 왕복 1시간 조금 넘는 코스로 비교적 쉬운 코스에 속한다. 다만 너무 더운 시간대는 피하는 게 좋다. 심장마비로 쓰러질 뻔 했으니까. 물은 꼭 챙겨가도록 하고 반바지 보다는 긴바지가 좋다. 등산/하산하다가 똥 마려울 수도 있는데 화장실이 없으니 휴지도 챙겨가는 게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