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재판 방청기

2020. 10. 20. 10:12삶/일상의 소중함

드라마와는 사뭇 달랐다.

 

미국드라마 굿와이프를 보고 있다. 어느 법무법인 변호사와 형사·민사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법정 드라마다. 법정 드라마 속 재판장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그래서 재판을 직접 두 눈과 두 귀로 느껴보고 싶어졌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법원은 서울서부지방법원이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열리는 오전 재판을 방청하고 싶어서 서울서부지방법원행 지하철에 올랐다. 공덕역 4번 출구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었더니 서울서부지방법원이 나온다. 3층으로 올라갔다. 여러 방이 나무로 된 문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한참을 헤매는데 어느 할아버지와 젊은 여자가 어느 방에서 함께 나왔다. 여자는 검사이거나 변호사인 것으로 보였다. "벌금 50만원 내셔야 해요. 다음부터는 절대 이러시면 안 돼요."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연신 "아이고,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안 그래야죠."라고 굽신거렸다.

 

재판 방청왔는데 어디로 가면 될지 물었다. 여자가 "1층 안내데스크에 물어보세요"라고 해서 "아까 내려가서 물어봤는데 문 앞에 붙은 내용을 보고 들어가시면 될 거에요라고 하더라고요"라고 했더니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어쨌든 1층으로 다시 걸어 내려갔다가 이번엔 4층으로 가봤다. 4층에는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이 보였고 어느 재판장 문 옆에 재판순서가 흘러내리는 전광판이 있었다. 여기구나 싶어서 잠시 서서 풍경을 바라보았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갔더니 재판이 한창이었다. 처음에는 뒷쪽 의자에서 구경하다가 변호사와 피고인이 있는 오른쪽 앞좌석으로 옮겼다. 재판의 주인공은 판사도 검사도 아닌 피고인이므로.

 

재판장에는 판사가 정중앙에 앉아 있고 그 앞으로 서기와 사무보조원으로 보이는 남녀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약 2미터 정도 떨어진 곳 좌측에 검사와 청원경찰이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변호인과 피고인석이 있다. 그 앞쪽 대기석에서 방청할 수 있었다.

 

약 20분이 지나면 1개의 재판이 끝났다. 2시간 동안 방청했으니 약 10개의 재판을 구경한 셈이다.

 

먼저 판사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했던 것보다 점잖은 모습이었다. 욕은 한 번도 하지 않고 변호인과 피고인에게 예의 바르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객관적이며 명확한 단어 구사, 발화가 인상적이었다. 명령을 하는 강압적인 모습이라기 보다는 조정을 하려는 모습이었다.

 

검사는 열심히 서류를 뒤적거리고 나서 판사를 향해 구형했다. 피고인은 이러저러 했기 때문에 징역 1년을 구형합니다라는 식이었다. 검사가 구형하면 판사가 변호인에게 다음 재판 일정을 제안하고 확정했다.

 

재판순서는 이랬다. 피고인과 변호인이 입장하고 유리한 진술을 한다. 증거 동영상이 있는 경우 사무보조원이 CCTV 영상을 컴퓨터로 틀고 벽면에 있는 대형 스크린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변호인이 사건과 관련하여 판사와 대화를 나누고 검사가 일어나 구형한다. 판사는 피고인의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고 피고인의 잘못이 명백할 경우 합의에 대해 노력할 것을 당부한다. 마지막으로 판사가 피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며 진술 기회를 준다. 다음 재판 기일을 협의하면 재판이 끝났다.

 

부동산 사기와 관련한 사건이 많았으며 폭행, 상해가 그 다음으로 많았다.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사건 몇가지를 적어본다.

 

80년생 여자였는데 벽돌을 들고 상대 여자 머리를 가격했다. 게다가 피해자 소유 자동차도 벽돌로 내리쳤다. 부모와 인연을 끊었고 미국으로 유학간 자매들과도 연을 끊었다고 했다. 어려운 형편에 혼자 생활했고 우울증 약도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판사는 약을 먹고 있다고 해서 벽돌로 사람을 때리거나 차를 손괴하는 중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 피고인은 자신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쏘아붙였다.

 

서울서부지방법원 405호 형사법정 앞

 

어느 훈남 배달원도 기억에 남는다. 길거리에서 시비 끝에 상대방에게 주먹을 휘둘러 상해를 입혔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피해자와 합의를 하지 못했다며 판사에게 합의할 시간을 달라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동안 충분히 합의할 시간이 있었는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설명이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폭행 전과가 있었다고 했다. 잘생긴 얼굴인데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는지 안타까웠다.

 

술집 종업원을 맥주병으로 내리친 중년 남성의 사건도 떠오른다. 160cm 정도의 왜소한 키에 술에 취한 상황에서 시비가 있었다고 했다. 매서운 인상이었다. 검사는 징역형을 선고했다. 판사가 범죄기록을 보며 과거에도 폭행 전과가 있었고 술을 마시고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게 처음 아니라고 했다.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합의를 하지 않은 것도 문제 삼았다. 피고인은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과거에도 몇차례 비슷한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역무원을 우산으로 찌르고 때린 중년 남성은 겉으로 보기에도 위협적이었다. 체격도 크고 인상도 험악했던 그는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유예 판결을 받은지 2개월 만에 또 유사한 범죄를 저질렀다. 판사는 경찰도 이제는 피고인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재판까지 오게 된 거라고 나무랐다.

 

폭행과 관련된 네 개의 사건 모두 술이 시작이었다. 사람이란 무릇 술에 취하면 자제력을 잃는다. 흐트러진 후에는 안 해도 될 말, 안 해도 될 행동을 해 큰 화를 부른다. 재판장에 선 피고인들은 모두 초범이 아니었다. 음주운전과 폭행 전과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두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법원을 나와 집으로 걷다보니 방청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 때문에 고생하는 커플, 부부, 가족이라면 꼭 한 번 법원에 가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