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22. 11:43ㆍ라이프/잡문집
대학교에 다닐 적에 늘 붙어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대학교 MT에서 처음 본 영민이는 인상이 험악하고 곰처럼 덩치가 컸는데 왠지 정이 갔다. 우리는 같은 영문과에 다녔고 집도 서로 가까웠다. 영민이는 기아자동차 프라이드를 몰았다. 뿅카라고 불리던 비싼 오토바이도 있었다. 영민이, 건주, 나 이렇게 셋이 친했다. 영민이와 나는 학교 뒷편 오락실에서 철권이라는 게임을 자주 했다. 둘 다 막상막하였다. 수업이 끝나면 영민이는 늘 나와 건주를 집까지 자기 차로 바래다줬다. 우리에게 영민이는 형같은 친구였다. 영민이는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친구들한테 술도 사고 밥도 샀다. 영민이 차로 서울에 올라와 1박 2일로 여행했던 기억도 나는데.
어느 화창한 오후였다. 거실에 누워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민이의 친한 형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주유소에서 같이 알바를 하던 형이었다. 영민이가 OO병원 응급실에 있으니 빨리 오라고 했다. 어머니한테 다녀온다고 이야기하고 황급히 병원으로 갔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영민이 주변 사람들이 대기실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전화를 준 형이 영민이를 볼 거냐고 물었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가운을 입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섰다. 머리에 붕대를 한 영민이가 눈을 감은 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는데 몸은 멀쩡했다. 그런데 의식이 없었다. 팔과 다리 끝에 피가 통하지 않는지 검붉은 멍이 들어 있었다. 영민이가 죽었구나. 직감했다.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냥 멍했다.
영민이 장례식이 있었다. 대학 선후배들이 와서 인사를 나눴다. 같은 과 선배인 창의형이 와서 "두현아, 실감이 안 나지?"라고 했다. 그랬다. 영민이가 죽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어떤 여 후배는 "그렇게 붙어 다니던 친구가 죽었는데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수 있냐?"고 뒤에서 나를 나무랐다. 친한 친구와 앉아서 소주를 마셨다.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화장실에 갔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다. "영민아~"하고 소리를 질러도 소용 없었다. 어느 가을 저녁 그렇게 단짝 친구를 잃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몇년이 흘렀을 무렵에 영민이 어머니가 운영하는 치킨집에 갔다. 영민이 어머니는 반가워하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영민이 어머니는 되도록 내가 가게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민이가 자꾸 생각나서 그렇다고 했다.
너가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고싶다, 영민아.
https://www.youtube.com/watch?v=-4HI1_LTW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