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부가 돌아가신 날

2020. 4. 29. 07:24블로그/일상

결국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나에게는 이모부였던 그는 어머니에게는 친언니의 남편이었다. 전화로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어둡고 우울했다. 이모부가 살던 벌교로 갔다. 벌교터미널에 도착해 장례시작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얼굴의 친척들이 모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버지의 안내를 받고 부조금 봉투를 넣었다. 이모부의 아들이자 사촌형님 두 분이 이모부의 영정사진 앞에 서 있었다. 꽃을 들어다 놓고 절을 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말문이 막혀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친척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삼촌댁에서 잤다. 다음날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 장지로 향했다. 어릴때부터 외가는 자주 찾았던 터라 길이 익숙했다. 이모부가 누울 곳은 이미 정성스럽게 준비되어 있었다. 이모부의 몸을 함께 들고 무덤안으로 넣었다.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삽으로 흙을 퍼 뿌리는 의식을 진행했다. 그리고 사촌형이 포크레인으로 이모부가 들어가고 남은 빈 구덩이를 채웠다.

 

오직 죽음 앞에서만 모두 평등한 우리들

 

이모부댁으로 친척들이 모였다. 외삼촌이 이모부와 있었던 재밌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띄웠다. 역시 분위기 메이커였다. 어른들은 몹시 안타까워 하면서도 이제 곧 자신의 차례가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듯 보였다. 나는 그냥 즐거웠다 슬펐다 하는 감정을 오갈 뿐이었다. 부모님댁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고통스러워하는 게 보였다. 전화통화를 하다 왈칵 눈물이 쏟아져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모부의 아들이었던 두 사촌형님이 우리 부모님께 늘 잘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더 미안하고 더 슬펐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이모부와는 나이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늘 어렵게만 대했던 것 같다. 얼굴을 자주 봐야 친해지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친척들 모임이 있을 때도 거의 나가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모부는 세상 사람 모두가 바라는 '아프지 않은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모는 이모부가 자신의 속옷도 개어놓고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모부의 자식과 손주들은 호상이라며 수근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는 터져나오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