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2. 00:25ㆍ블로그/블로그 운영법
마치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었죠.
블로그를 시작한지 벌써 11년차군요. 2007년부터 시작했으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네요. '블로그의 신'이라는 이름의 책도 쓰고, 나름 바쁘게 지내온 10년인 것 같습니다. 블로그 덕분에 1위 언론사에서도 일하고 일반인들은 평생 만나보지 못하는 분들도 만나고, 덕분에 힘든 시기도 보내고(;;) 다채로운 경험도 할 수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모든 게 블로그 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거에요.
블로그 시작부터 열정에 불을 당길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헤어진 여자친구 때문이었습니다. 대학교 시절에 전 카페를 운영했었고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었어요. 영어영문학과에 재학했지만 사람을 모으고 싶은 마음에 1년 만에 3만명의 회원을 모았고 기업들과 제휴를 하며 적지 않은 돈을 벌었습니다. 지금 연봉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며 방탕한(?) 생활을 했어요. 물론 카페가 크기 전까지 투입된 장인적 에너지와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될 거에요. 하루에 최소 8시간 이상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죠. 수업이 비는 공간시간, 점심시간, 수업이 모두 끝난 시간, 틈나는 시간에는 무조건 전산실에 가서 카페를 관리했으니까요. Daum 카페 랭킹 5위 안에 들었으니 혼자서 키운 카페 치곤 상당히 선방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의 대형카페와 비교하자면 Daum의 이종격투기나 Naver의 디젤매니아 급이라고 보면 될 거에요.
대학 시절 저의 자신감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군 전역 후에, 정확히 말하자면 전역 후 복학하기 전에 올인한 카페가 대박이 났고 학교에도 곧 소문이 나기 시작했죠. 복학해서는 부모님께 장학금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열나게 공부를 했습니다. 머리를 밀고 수업시간에는 무조건 앞자리에 앉고, 교수님도 찾아다니며 열공했죠. 처음으로 공부로 인정받았던 시기였고 전장(전체장학금)도 탔습니다. 영문학과에 다녔는데 영문번역백일장에도 나가 2년 연속으로 금상과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정말 무서울 게 없는 대학생활이었습니다.
장학금을 탄 후에는 더 열심히 공부하기 보다는 유흥에 재미를 들였죠. 공대에서 잘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어요. 학교에서는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오빠라고 소문이 나서 몇몇 여후배들의 대시를 받기도 했죠. 당시에 재학중이던 대학에 축제가 있었는데 여기서 드렁큰 타이거의 노래를 부르며 랩을 했어요. 어설프기 짝이 없었는데, 리바이스 엔진에 나이키 티셔츠를 입고 나름 열심히 불렀죠. 일본어과에 재학중이던 여자애가 저한테 관심을 표했어요. 사학과에 재학중이던 동기녀석이 일본어과에 다니는 후배가 있는데 그녀가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당시에는 싸이월드와 비슷한 다모임이라는 게 있었는데요. 다모임에 들어가보니 그녀로부터 쪽지가 와 있었어요. 사진을 보니 예상과는 달리(?) 예뻤어요. 약속을 잡고 시내(지방은 번화가가 별로 없어서 번화가를 시내라고 부른다는..)에서 만났어요. 충장로에서 만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집에서 50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더라고요. 혈기왕성한 시기에 만난 우리는 정말 뜨겁게 사랑을 나눴어요. 집도 가깝다보니 거의 그녀 집에서 살다시피 했었고, 당시에 인기가 있었던 저는 자만했어요. 저에게 정말 잘했던 그녀를 두고 저에게 대쉬하던 다른 여자를 만났죠.
몇번이고 저의 방황을 지켜보던 그녀가 하루는 저를 부둥켜 안고 울면서 이야기했어요.
"나를 사랑하는 게 그렇게 힘드냐고..".
나중엔 결국 제가 잡았지만 마음이 돌아선 그녀는 더 이상 연락이 닿질 않았어요.
방황했어요. 너무 힘들었고, 자책도 많이 했고요.
그리고 저는 유명해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좋아하던 그녀였기에 유명해져서 책을 쓰면 나를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일종의 믿음이 있었죠. 블로그를 시작한지 10년이 지나서 책을 썼어요. 물론 2009년 한참 블로그가 떠오르던 시절 길벗 등 중대형 출판사에서 수차례 러브콜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무엇 때문인지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사회생활을 하며 갖은 고초(?)를 겪다 책을 쓰게 됐고 드디어 제 이름으로 책이 나왔네요.
블로그를 시작한 계기는 사실 돈을 벌기 위해서도, 취업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어요. 때를 놓친 여자친구가 조금이라도 유명해진 저를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죠.
그녀는 아마도 지금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을테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을 거에요.
유튜브에서 가끔 옛노래를 듣다보면 그녀가 생각나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라는 노래를 참 좋아했었거든요. 그녀가 늘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널 만날 때가 제일 행복했어"라고 하던 그녀가 여전히 그리울 때가 있어요.
모쪼록 그녀가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꿈 속에서는 자주 봤었는데 실제로 만난다면 꼭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나도 널 만날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