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 01:41ㆍ라이프/책&작가 평론
글쓰기 자료를 수집하다 우연히 유시민 전 의원의 글쓰기 강의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 내용이 너무도 알차고, 배울 점이 많아 동영상을 재생하고 정지시키고를 반복, 필사(베껴쓰기)하여 한글 문서로 저장했습니다. 두 시간 넘게 걸린 듯한데 한글 문서로 총 10페이지 분량입니다. 무지 고단한 작업이었지만 필사를 마친 지금의 보람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2시간 짜리 글쓰기 훈련을 받은 기분입니다.
유시민 전 의원이 강의 속에서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좋은 책 2권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다른 하나는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글 바로쓰기 이렇게 두권입니다.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는 소장하고 있으나 여태 읽어보지 않았네요. 책장에 꼽혀 있는 걸 꺼내서 얼른 머리맡에 두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책은 도끼다'를 통해 알게 돼 약 2주 전부터 '이오덕 일기' 1권을 읽고 있습니다. 과거 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할 당시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남긴 한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아이들로부터 배우는 점들, 안타까운 현실과 투쟁하는 일기글을 엮은 책입니다. 꼭 한번 읽어보시라며 권해드립니다.
글쓰기가 왜 중요하냐면 여러분이 대학입학시험 치는 데도 글을 잘쓰면 좋죠? 그 뿐 아니라 앞으로 어떤 직업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기 생각을 글로 잘 정리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조직에서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평생 살면서 자기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기술, 방법을 아는 것은 제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불가결한 요소다 그렇게 말씀드려요.
제가 책도 여러권쓰고 신문에 칼럼도 쓰고 했습니다만 여러분만 할때 단 한 번도 문예반장이었다거나 또는 뭐 이른바 글짓기를 잘해서 상을 받았다던가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20대 중반쯤 여러분 나이보다 7~8살쯤 더 많은 그 때쯤 가서 저보고 사람들이 글을 잘 쓴다고 그러더라고요. 글을 잘 쓰니까 자꾸 사람들이 글 쓰는 일을 저한테 맡겨요. 자꾸 또 쓰다보니까 또 더 잘 쓰게 되고 그렇게해서 오늘날 그냥 글쟁이로 이렇게 살게 됐습니다.
그런데 오늘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은 제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내가 경험했던 것을 돌아볼 때 이렇게 하면 잘 쓰겠다 하는 것을 여러분에게 이제 이야기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따분한 도덕 강의를 하는 것 보다는 이런 것을 하는 것이 여러분에게도 피가 되고 살이 될 것 같으니까 해볼게요.
글 이전에 말이 있죠. 말. 여러분이 글을 깨우치기 이전에 벌써 말을 했죠. 혹시 말을 배우기 이전에 글부터 배운 사람 있습니까? 없죠? 말이라는 것은 어디서 나오느냐. 두뇌에서 나오죠. 생각이 있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겁니다. 제일 앞서는 것은 생각이고 두 번째는 말이고 맨 마지막이 글입니다. 글이 먼저가 아니에요. 이게 아주 중요한 점인데. 여기 생각이라는 것은 형체가 없죠. 만질 수도 없고. 그죠? 볼 수도 없어요. 결국 생각은 형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엔가 담겨야만 모양이 생깁니다. 물하고 비슷해요. 물은 정해진 형상이 없습니다. 동그란 그릇에 담으면 동그란 모양이 되고, 동그랗게 담기고, 네모란 그릇에 담으면 물도 네모가 되게 돼있어요. 언어라는 것은 말, 글을 합쳐서 언어라고 하죠.
언어라는 것은 생각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런데 생각이 많이 있어야 그 다음에 언어로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릇 자체가 없으면 물을 담을 수가 없어요. 그릇이 없으면 물이 담기질 않습니다. 그래서 언어가 있어야만 사람이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언어가 없으면 생각을 못합니다. 사람은 언어를 통해서 사고하죠. 그래서 어떤 사람이 얼마나 풍부한 언어를 가지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생각의 크기를 결정해요. 그릇이 1리터짜리면 물도 1리터 밖에 담기질 않죠. 그릇이 10리터짜리면 물도 10리터가 담깁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어휘가 많을수록 단어, 그 다음에 그 단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수록 여러분은 더 많은 생각을 머릿속에 담을 수가 있어요. 글을 알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이 하면 할수록 그 능력을 키우면 키울수록 여러분의 생각도 커지게 됩니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고 어휘가 적은 사람은 결코 풍부한, 깊은 사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언어로 사고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제가 오늘 글 잘 쓰는 방법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기술은 얘기를 안하고 어휘가 많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죠. 영어를 익힐 때, 단어를 많이 알면 알수록. 그죠? 똑같은 조건이라면 단어를 많이 아는 사람이 훨씬 더 영어를 쉽게 배우죠.
우리말이라고 해서 다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어휘는 몇 백개 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알고있는 어휘,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어휘의 숫자가 굉장히 차이가 크게 납니다. 어휘의 숫자를 적게, 적은 어휘밖에 가지지 못한 사람은 아주 단순한 표현 밖에 할 수가 없고, 그렇게 단순한 어휘만 알고 있는 사람은 결코 복잡한 문제에 대한 사색을 할 수가 없어요.
글을 잘 쓰는 방법 첫 번째는 어휘입니다. 어휘를 많이 알아야 되요. 어휘를 많이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책을 보는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몇백개 되지 않아요. 여러분 300단어만 알면 영어회화를 할 수 있다고 하죠.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히딩크 감독을 보세요. I am still hungry. 딱 네 단어잖아요. 나는 계속해서 이기고 싶어. 네단어로 표현하잖아요. 글이 복잡한 것도 네단어로 표현하는데 우리가 이삼백 단어만 있으면 일상생활 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어요.
여러분이 전부 다 우리말을 하지만 똑같은 우리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어떤 사람은 숫자로 치면 100개짜리 우리말을 하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10개짜리 우리말 밖에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혹시 더 자라서 외국 유학을 가보면 더욱 더 잘 알 수 있는데요. 똑같은 미국학생, 영국학생, 독일학생 자기들 모국어로 공부할 경우에도 결코 그 독일어가 똑같은 독일어가 아니고 그 영어가 똑같은 영어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나중에 나가보시면 느끼게 됩니다. 아마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한국 학생들을 보더라도 똑같은 걸 느낄거에요. 같은 우리말이 아닙니다. 어휘가 다르면.
어휘가 일차적으로 중요합니다. 글 쓰는 기술을 익히기 이전에 어휘를 많이 알아야 되요. 우리말에서 어휘가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두봉 주교라는 프랑스의 신부님이 있는데 그 분이 인터뷰하는 걸 봤더니 이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한국에 1950년대에 오셨는데 한국말을 배우기가 하도 어려워서 기도하면서 그랬다는 거에요. 아~ 이나라 말은 악마가 만든 말임에 분명하다. 한국말이 배우기가 굉장히 힘든 말이에요. 어미변화가 굉장히 심합니다. 여러분 중에 독일어 공부한 학생 있나요? 없어요? 독일어는 어미변화가 심하죠? 관사, 부정관사, 형용사, 동사 어미가 다 변하는데 영어도 어미변화가 있긴 합니다만.
그런데 우리말은 정말 어미변화가 심해요. 그래서 외국인 배우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거기다가 토종 우리말이 있는가하면 한자말이 많아요. 사상, 이런 단어도 한자로 표기된 말이죠. 그래서 이 우리말과 한자에서 유래한 한자말이 뒤섞어지면서 똑같은 뜻을 가진 단어도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고통을 표현하는 데 굉장히 능하다 그래요. 서양에서는 어디 아파요? 배 아파요. 복통, 그죠? 치통. 이런 단어 하나 밖에 없어요. 우리말은 어떻습니까? 배가 콕콕 쑤셔요. 아랫배가 쩌릿해요.부터 시작해서 뭐가 막힌 것처럼 답답해요. 어때요. 아주 아픈 것을 묘사하는 말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죽었다. 돌아가셨다. 떠나셨다. 가셨다. 밥숟가락 놨다. 그죠? 표현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요. 죽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그 제가 재미난 말로 우리말에는 무늬가 있어요. 무늬가. 이걸 좀 유식한 말 좋아하는 사람은 뉘앙스 차이가 크다 이렇게 이야기하죠. 말에 결이 있어요. 결이. 우리말은. 그런데 이것이 순수 토종 우리말과 한자말이 뒤섞이면서 굉장히 다양한 말에 무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앞에 어머님들도 앉아계시는데 아주 예쁜 어머니를 보고 아 저꼴이 정말 아름다워 이렇게 말하면 되겠습니까? 밖으로 드러나는 형상을 가리키는 말이 모습, 모양이라는 말이 있죠. 가장 중립적인 뜻을 가진, 뉘앙스를 가진 모양이죠? 모양. 그것보다 약간 더 긍정적인, 더 좋은 뜻을 가진 게 모습입니다. 모습. 저 어머니 모습이 참 고우셔. 모습이라는 단어의 모습이라는 단어에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있죠. 더 올라가면 뭐가 되죠? 자태. 천사처럼 고운 자태. 천사처럼 고운 꼴. 그러면 안되죠. 이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는 말의 무늬에요. 어휘의 무늬입니다. 똑같은 의미에요.
모양에서 부정적인 어휘가 뭐가 있습니까? 꼴. 저 꼴하고는. 노는 꼴 하고는. 꼴보다 조금 더 격렬적인 것은 뭐가 되죠? 꼬락서니. 그보다 최악이 뭐죠? 몰골. 베트공 같은 몰골을 하고서. 60년대 70년대에 유행하던 표현이에요. 몰골에서 자태에 이르기까지 제가 잘 모르는 어휘들도 중간에 있을거에요 아마. 제가 대충 뽑아봐도 예닐곱 개 정도가 있죠. 이 단어들을, 이건 굉장히 쉬운 예인데 이것이 어떤 다른 어휘와 잘 어울린다는 것을 여러분은 다 알죠? 아름다운 꼴 이건 없어요. 흉측한 자태 이것도 없습니다. 단어와 단어, 어휘와 어휘가 서로 어떻게 궁합이 맞는가를 여러분은 일상생활의 용례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실수를 잘 하지 않죠. 그런데 외국인이 우리말을 처음 배울 때라면 잘못하면 아름다운 꼬락서니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겠죠.
실제로 외국어를 배울 때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그때는 이제 여러분이 어떤 논술을 하거나 어떤 주제에 대한 여러분의 견해를 쓰거나 이럴 때는 참 표현이 단순해요.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경제학 교양과목을 강의해본 적이 있는데 리포트를 써오거나 필기시험 답안지를 보면 한쪽의 답안지 안에 똑같은 표현이 네 번, 다섯 번 등장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얼마나 표현법을 모르면 똑같은 표현을 한 페이지 안에 네 번, 다섯 번 반복해서 쓰냐는 거에요. 어휘가 부족해서 그래요. 같은 표현이 한 페이지 안에 너댓번 나오면 벌써 찍 긋습니다. 평가하는 사람이. 형편없군. 지금은 글을 좀 덜 씁니다만 글을 많이 쓸 때는 책으로 해서 30페이지, 40페이지가 지나가는 동안 같은 표현이 나오면 아~ 이건 앞에서 썼던 표현인데 하고 다시 찾아보고 나서 다른 표현을 써요. 그런데 어떤 다른 표현이 있는지를 모르면 쓸 수가 없죠. 그러니까 아주 단순하게 이것은 저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뭐 이렇게 계속 가는 거에요. 아주 따분합니다. 이런 글은 절대로 좋은 평가를 못 받아요. 그러니까 기본이 되는 것은 어휘, 어휘, 어휘를 늘려야 돼요. 우리말을 한다고 해서 다 많은 어휘를 알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어휘를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냐? 과외를 받느냐. 필요 없어요. 과외 같은 것은 있죠. 좋은 책. 우리말 어휘를 굉장히 풍부하고 정확하고 예쁘게 구사한 소설. 이런 것을 옛날에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영어사전을 다 외우면서 한 장씩 찢어가지고 씹어 먹는다는 그런 소문도 있었는데 멍청한 짓이죠. 일제시대 때부터 유행하는 건데 그게.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냥 한 번 읽고 잊어먹고 또 한 번 읽고 잊어버리고 또 읽고 잊어버리고 계속 잊어버려요. 읽고 잊어버리고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읽다보면 어느 순간엔가 그 단어들이 그 어휘들이 나의 것이 되어있다라는 것을 알게되죠. 그걸 어떻게 아냐 하면. 계속 입력만 할 때는 그게 자기 것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어휘들을 자기가 출력하기 시작하면, 출력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면 그럴 때 자기 어휘가 되는 거에요. 용법을 알아야 어휘를 사용합니다. 단어를 외우면 소용이 없어요.
故 박경리
그래서 제가 권하는 책은 박경리 선생님이 쓰신 토지. 제가 지금까지 읽어본 책 중에서 우리말 어휘를 늘리는 데는 가장 훌륭하게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거기 보면 낯선 어휘가 많기 때문에 때로는 토지 사전 있죠? 토지에 등장하는 어휘를 설명하는 사전이 있어요. 그거 쓸 필요 없습니다. 그냥 뜻이 이해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읽으면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그 단어가 혹은 그 표현이 어떤 뉘앙스를 가진, 어떤 메시지를 지닌 표현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돼요. 한 다섯 번 읽어도 해석이 안 되는 단어 이런 것은 사전을 한번 뒤져보면 좋겠죠. 제 권하고 싶은 책은 토지입니다. 토지 3부, 4부는 읽지 않아도 돼요. 1부, 2부만. 토지는 굉장히 재미난 책이에요. 중간에 남녀상열지사가 들어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어떻다 이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청소년용 토지가 따로 나왔는데, 그거 읽지 마세요. 그냥 오리지날로 읽으십시오.
나도 여러분만한 나이 때, 원래 아이들은 불량식품도 먹으면서 자라는 거 맞죠? 어릴 때 가게에 가보면 큰 메이커에서 나오는 그런 이름있는 과자보다 상표도 알 수 없고 이런 정체도 알 수 없는 울긋불긋한 그런 과자가 훨씬 맛있어 보이잖아요. 그런 거 먹으면서 면역력도 키우고 자라는 거에요. 독서도 그렇습니다. 권장도서, 교양도서, 이거 학교에서 주는 거 문화관광부에서 교육부에서 내리는 거 이것만 읽는다고 해서 지적으로 튼튼한 그런 사람이 되는 게 아니에요. 불량식품도 먹듯이 불량서적도 읽어도 괜찮습니다. 우리 여학생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남학생들은 몰래 숨어서 못된 걸 많이 읽잖아요. 그러니까 토지 정도는 괜찮아요.
토지 1부와 2부를 가능하다면 10번. 10번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번. 그냥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괜찮아요. 그냥 읽어요. 재미있으니까 그냥 읽으면 돼요. 계속 한 다섯 번 여섯 번 읽으면 토지에 들어있는 어휘, 문장, 표현방식, 이런 것들이 다 여기(머리)에 입력이 돼요. 어떤 사람은 3번만 읽어도 벌써 출력을 하는 사람이 있고. 조금 타고난 재능이, 아쉽게도 무딘 분들은 한 10번 혹은 5번 읽어야 출력이 돼요.
글 쓸 때 동원할 수 있는 어휘와 표현방법을 풍부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책을 반복해서 여러번 읽는 것이다. 이게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왜 내가 글을 잘 쓰게 되었을까? 라고 생각해볼 때 이것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사실상. 많이 읽지 않으면 절대로 글을 잘 쓸 수 없죠. 아무리 훈련을 하고 아무리 족집게 과외 선생님하고 논술을 공부를 해도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에요. 논술시험을 보는데 예상문제의 답을 미리 써가지고 그걸 통째로 외워서 들어가 쓴다는 거, 이건 정말 비극적인 거에요. 아이들을 그렇게 키워서 어디다 쓰겠어요. 여러분 그런 거 절대 하지 마세요. 책을 많이 읽으면 됩니다. 밥중에 참고서 안보고 학원 안가고 토지 읽고 있다고 타박하지 마시고 어머님들은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이 밀어주세요.
두 번째로 어휘가 어느 정도 있다면 아무 어휘나 많이 안다고 글을 잘 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아까 이야기했죠. 생각이 먼저, 두 번째가 말, 세 번째가 글입니다. 먼저 말이 있고 나중에 글이 생겼어요. 먼저 말을 배우고 나중에 글을 씁니다. 글은 짓는 게 아니에요. 생각을 말하는 대신 글로 옮기는 것이 글쓰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글에서도 기본이 되는 것은 말이지 글이 아니에요. 이걸 달리 표현하면 말에는 글말과 입말이 있는데 글말은 종이에 써지는 말이고 입말은 우리가 하는 말입니다. 입말이 기본이고 글말은 그 기본을 옮긴 거에 불과해요. 그런데 우리가 종종 보면 아주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문어체의 문장을 쓰거나, 이런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것은 말이 글의 지배를 받아서 그런 거에요. 좋은 글은 말하듯이 옮겨 놓은 글이 가장 좋은 글입니다. 가장. 그러니까 이런 거죠. 우리가 말로는 하지 않는 단어. 말로는 쓰지 않는 표현. 이런 것을 글로 쓴 것은 엉터리에요. 여러분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말과 글이 얼마나 예쁘지 않고. 좋은 글은요. 써놓고 읽어보면 듣기도 좋아요. 글 써놓으면 그럴듯한데 읽어보면 아주 어감이 나쁘고 이런 글은 잘못된 글입니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책은 이오덕 선생님, 얼마전에 돌아가셨죠?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우리글 바로쓰기. 1권만 읽으면 돼요. 1권, 첫권 한권만 화장실에 놔두고 이것은 진지하게 읽지 않아도 돼요. 이것은 진지하게 읽지 않아도 돼요. 화장실에 놔두고 잠깐잠깐씩 몇 페이지씩 읽어보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쓰는 글과 말이 얼마나 잘못돼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여러분이 방송에서도 많이 들을 겁니다. 요즘 어떤 지식인들이 나와가지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 이것은 뭐 우리 사회가 더 발전되어지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발전되어지면 해결되어질 수 있는 문제라고 보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이것은 우리말이 아닙니다. 우리말에 발전되어지고 라는 말은 없어요. 이것은 전부 일본어와 영어의 피동형 문장에서 넘어온 겁니다. 우리나라가 좀 더 발전하면 이렇게 표현해야죠. 우리나라가 좀 더 발전하면 사회가 좀 더 발전하면 해결할 수 있는, 저절로 해결될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해야 되는데 해결될 문제로 보입니다. 나는 없어요. 나는. 내가 없어요. 내가. 글쓰기에.
여러분 신문 보시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칼럼 본 적 있습니까? 거의 없죠.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칼럼을 쓰는데 칼럼은 뭐냐? 오피니언 페이지에 실리죠. 나의 주관적인 생각을 밝히는 글이에요. 거기서 문장 속에 내가 있든 내가 없든 간에 그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지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본다 라고 써야 될 것을 이렇게 보여진다. 이렇게 써요. 아주 무책임하죠. 남 얘기 하듯이.
글쓰기에는 내가 있어요. 내가.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우리말에는 수동 문장이 원래 거의 없습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수동문장을 쓰지 않아요. 우리말에는 무생물 주어라는 게 없습니다. 영어나 이런 데서는. 영어나 유럽말에서는 무생물 주어를 써가지고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문장이 많이 있어요. 우리말에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생물 주어가 들어있는 피동형 문장을 계속 우리말로 쓰니까 이게 전혀 리듬도 안 맞고 예쁘지도 않은 우리말이 돼요. 거기다가 한자말 많이 쓰죠. 무슨적, 무슨적, 그죠? 발전적, 적적 하는 건 일본말에서 온 겁니다. 읽어보세요. 얼마나 피곤해요. 소리내서. 어떤 때는 쩍 소리가 나죠. 발전적, 그죠? 마음적으로다. 마음으로는 마음에는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을 마음적으로는 참 아프죠. 우리말은 완전히 비틀어져 있습니다. 이건 이제 우리말이 아닌 것이 들어와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글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읽는 사람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어야 해요. 소리 내서 읽을 때 예쁘게 들리는 글이라야 좋은 글입니다. 그래서 어휘를, 제대로 된 우리말 어휘를 제대로 쓰는 것 이것이 글쓰기의 기본이죠.
첫 번째가 어휘, 어휘를 키우기 위해서는 좋은 책을 여러번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선정해서 반복해서 읽어야 됩니다. 그것이 자기 것이 될 때까지.
두 번째는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좋은 글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널린 나쁜 글들을 만나요. 우리가 읽는 책들은 심하게 오염되어 있는 문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가 오염되고 우리가 마시는 물이 오염되고 그런 것처럼 글과 말도 오염돼있고 병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면역력을 길러야 돼요. 아무 책이나 읽는다고 마음의 양식이 되는 게 아니에요. 음식도 상한 걸 먹으면 독이 되는 것처럼 못되게 써진 그런 책을 많이 읽으면, 우리가 쓰는 말이, 우리가 쓰는 글이 병들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언제나 좋은 글만 읽을 수는 없기 때문에 나쁜 글을 읽을 때는 잘못 써진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 이런 것을 길러야 되고, 그렇게 스스로 면역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아이들을 키울 때 멸균실에서 아이를 키울 수는 없잖아요. 나가면 세균이 드글드글한데 학교 갔다오다가 불량식품 사먹을지 모르는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쁜 것이 들어와도 그것을 인지하고 스스로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이죠. 인체에서 항체를 형성하는 그런 능력이 중요한 것처럼 정신적으로 또는 지식 면에서도 나쁜 것을 알아볼 줄 알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의 어떤 저항력, 이런 것들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이런 이오덕 선생의 것을 여러번 읽을 필요도 없고 한 번만 읽으면 돼요. 한번만.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글쓰기를 할 때 그것이 사실에 관한 것인지 해석에 관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이효리가 김희선 보다 더 예뻐. 이렇게 누가 말했다 칩시다. 아니야 효리보다 김희선이 더 예뻐. 누가 반박을 했다 칩시다. 이 논쟁은 밤새도록 끝이 날까요? 안 나죠. 이것은 각자의 취향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우리는 이런 것을 가지고 싸우는 경우가 참 많아요. 그러니까 이런 각자의 취향과 주관에 관한 문제는 논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내가 된장찌개보다 김치찌개가 더 좋다는데 대통령이 그것에 대해서 말릴 수가 있어요? 무슨 보건복지부 장관이 그것에 대해서 뭐 규제를 가할 수가 있습니까? 그건 개인의 취향이거든요.
우리가 글을 쓴 것을 이렇게 보면 나의 주관적 취향과 어떤 논리적인 어떤 주장 사이에 구분을 못해요. 어느 게 어느 건지. 제가 하나 예를 들어보죠. 우리가 서로 논쟁을 하고 서로 이견을 주고받게 되면 자기가 내리는 어떤 주관적인 판단의 근거를 제시해야 돼요. 예를 들어서 나는 이효리가 김희선보다 더 마음에 들어. 왜냐하면 몸매가 더 풍만하니까. 이렇게 얘기한다고 쳐봐요. 그럼 그것에 대해서는 논박할 수가 있습니다. 풍만하다는 근거가 뭐야? 그럼 어디가 살이 많으면 풍만한 거야? 이렇게 논쟁을 벌일 수가 있죠. 그러나 나는 막연히 나는 이효리가 김희선보다 더 좋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답이 딱 하나죠. 어, 그러니? 그 외에는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어떤 논증을 하라는 글을 쓰라고 과제를 주는데 자기 취향을 잔뜩 늘어놔요. 그러면 평가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게 되면 아~ 얘는 이효리보다 김희선을 더 좋아하는구나. 그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따름이지 그 사람의 논증능력을 검증해낼 수가 없어요. 여러분이 수필을 쓸 때는 상관없어요. 그러나 대부분 여러분이 대학 입시에서 만나거나 학교에서 과제물을 처리하거나 대학 다니면서 리포트를 쓰거나 또는 사회에 진출한 다음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고서를 쓰거나, 기획안을 만들거나 이럴 때 언제나 중요한 것은 근거입니다. 근거. 어떤 판단이 아니라 그 판단을 내릴 근거를 제시해야 되요. 논증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것이 반박할 수 있는 것이고 어떤 것이 반박할 수 없거나 반박할 필요조차 없는 주관적인 취향에 관한 문제인가를 구분을 해줘야 돼요.
그래서 글쓰기를 할 때 이것 참 조심해야 되는데요. 제가 한 예를 들어보죠. 우리 이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릴 때부터 토론을 참 별로 안 하죠. 굉장히 큰 병폐입니다. 엄마, 이건 왜 그렇게 해야 돼? 선생님 왜 그렇게 해야 되요? 쪼그만 게 말대꾸하고 있어. 꼬박꼬박 말대꾸야. 또는 선생님 이건 왜 이래요. 왜 저래요. 그러면 아무개야 너무 따지는 것도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이거 곤란하죠.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다 창의적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이가 되면 창의적이기를 그만둬요. 왜냐하면 창의적으로 살려면 몹시 피곤하거든요. 왜냐하면 의문이 해소되지 않으면 물어봐야 되는데. 물어보면, 잘못하면 너 나이 몇 살이야? 답변이 돌아오게 돼요. 사회에 나가면. 학교에서는 안 그러겠지만. 그러니까 왜라는 물음을 계속 던지는 사람은 인생이 피곤해요. 대한민국에서는. 그런데 대부분의 천재들은 어릴 때의 별명이 미스터 와이(Why),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끊임없이 왜라고 물으니까.
제가 독일 있을 때 지금 여기에서는 대학원생이죠. 대학원생들의 국제 세미나에 가서 여러 나라 학생들이 다 모여있는데 독일학생 둘이서 논쟁을 하는 걸 봤는데. 한 학생은 독일 남부 뮌헨 근처에 바이에른 주에서 온 학생이에요. 우리나라로 치면 경상도 비슷한 데입니다. 대구, 알겠죠. 어떤 데인지. 그 다음에 한 학생은 함부르크에서 온 학생이에요. 북 독일쪽에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어디쯤 될까요? 인천 뭐 그정도 될까요? 둘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어떤 정당의 청년당원행사에 그 당의 당수가 나와서. 총재가 나와가지고 같이 테크노댄스를 추면서 노는 장면이 나와요. 50대의 정당대표가 20대의 대학생 당원들 하고 테크노댄스를 추면서 노는 장면이 나와요. 그런데 봤더니 어떤 젊은 여성 대학생 당원이 배꼽에 피어싱이라 그러나요? 그걸 했어요. 배꼽티를 입었는데. 어떤 사람은 코 피어싱도 하고. 어떤 엄마들은 한국 교민들 딸들 중에 이렇게 해서(코어싱에 피어싱해서) 오면 이년아 코를 왜 뚫어? 이렇게 하면 엄마 코 뚫었어? 왜 그래? 이렇게 해서 이제 굉장히 부모들이 속이. 내 코 내가 뚫는다는 데 무슨 상관이야. 이제 그런다는 거 아니에요.
이제 거기 배꼽을 뚫은 학생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아주 보수적인, 바이에른주에서 온 학생이 딱 보더니 우리식으로 하면 미친 것들. 미친 것들. 그랬대요. 인천쯤에서 온 거긴 진보적인 데거든요. 대학생이 뭐가 미쳤는데? 그랬더니 저거 뚫어가지고 무슨 금고리 달고 이럴 돈 있으면 아프리카에 굶는 애들 밥값이나 기부하지. 이랬어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봤더니 이제 함부르크에서 온 학생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그럼 귀걸이는 어때? 보통 우리가 하는 귀걸이 그거야 괜찮지. 그건 왜 괜찮은데? 그 귀걸이 값은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서 기부하면 안 되나? 그러더니 그러면 귀걸이 한 개가 아니고 열 개면 어떻지? 열 개면 더 정상인가? 논쟁이 붙었어요. 30분동안 그걸 가지고 논쟁을 하더라고요.
결론이 뭐냐하면 정상적인 장신구와 미친 짓 같은 피어싱 사이에 정상적인 어떤 치장행위 미친짓 같은 피어싱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것이 결론이었어요. 그 결론에서 무엇이 나오느냐 하면 따라서 어떤 사람이 자기의 미적 취향을 과시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을 다른 사람이 자기가 가진 잣대를 가지고 들이대가지고 비정상적이거나 미친 짓으로 몰아갈 권리는 없다. 그 경계선이 모호하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경계선이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각자 상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취향을 존중해줄 수 밖에 없고 대체로 자기가 생각건대 아주 혐오감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자기가 가진 가치기준을 벗어나는 정도의 행위를 하는 것도 용인해야 된다. 결론은 유식한 말로 Tolerance. 똘레랑스. 관용. 그게 결론이죠.
그런데 제가 이 논쟁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논거를 댈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논쟁과 글쓰기를 막론하고. 그러니까 아유~ 나는 저 배꼽피어싱, 코피어싱은 보기 싫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취향에 관한 문제니까 별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난 저걸 미친짓이라고 생각해 라고 말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논거를 제시해야 돼요. 내가 글쓰기를 하면서 한 문장을 썼을 때 이 문장에 대해서 남들이 반박할 수 있게 하려면 반드시 논거를 제시해야 돼요. 논거를 제시하지 않는 취향의 표현은 평가할 수도 없고 반박할 수도 없어요.
우리가 논증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논리학을 학교에서 배울 거에요. 귀납법, 연역법, 그래가지고 뭐 삼단논법 많이 배우죠? 그런 거 그런 형식을 많이 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예컨대, 이렇게 생각한다. 라고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거기에 왜냐하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얘기가 나와야 돼요. 어떤 사실에 관한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에 관한 것은 a는 b다 라고 쓰는데요. a는 b다. 사실에 관한 것은. 해석에 관한 것은, -라고 생각한다. 하고 왜냐하면-, 왜냐하면 빼도 괜찮아요. 반드시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는 a를 b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써야 될 것을 a는 b다 라고 쓰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태양은 하루에 한 번 뜬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논증이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다른 어떤 것을 표현했을 때 남들이 모두 인정하지 않는 어떤 것. 모든 다른 사람들이 다 인정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주장할 때는 그것을 형식상 a는 b다 라고 쓰는 경우에도 반드시 자기가 a를 b로 생각하는 이유를 적어야 됩니다.
그런데 글쓰기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오류 중에 하나가 동어반복이죠. 나는 배가 고프다. 왜냐하면 아침에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 나면 나는 아침에 밥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배가 고프다. 이 이야기를 한 페이지 안에 두 번, 세 번 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반복, 불필요한 반복. 항상 중요한 것은 필요한 얘기만 하고 자기가 하는 이야기 중에서 논증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하나둘셋넷, 하나둘셋, 하나둘, 또는 하나, 이렇게 밝혀주는 것. 그래야만 이것을 평가할 수가 있어요.
제가 글을 잘 쓴다는 사실을 저는 몰랐습니다. 잘 몰랐는데, 언제 처음 나도 글을 좀 잘 쓴다 라는 느낌을 가졌냐하면 제가 1978년에 대학입학시험을 봤으니. 그때는 예비고사라고 해서 지금 수능시험 같은 게 없고 또 이제 거기다 0.4를 곱해가지고 안고 들어가서 최종 라운드 본고사, 이걸 가지고 합쳐서 이렇게 뽑는 제도였는데 저희 때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이렇게 이제 본고사를 봤어요. 문과는. 그런데 국어시험에 굉장히 큰 점수, 100점 만점에 한 20점쯤 되는 그런 문제가 작문 문제였어요. 내가 사랑하는 생활. 그런 제목이었는데 이건 제가 지금 기억하는 제목이고 그 당시에 정확히 기억을 되살려 보면, 나의 사랑하는 생활, 그렇게 되어 있었어요. 나의 사랑하는 생활이라는 것은 잘못된 우리말이죠? 그건 일본식 표현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생활이라는 제목이었어요. 400자 원고지를, 600자 원고지를 채우는 거였는데 열심히 잘 썼습니다. 쓰고 나서 봤더니, 제 글의 주제는 뭐냐하면 나는 평범하게 사는 생활을 사랑한다. 그게 저의 주장의 요지였는데 나중에 봤더니 성적도 좋고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꽤 잘 썼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글을 잘 쓰는 마지막 요령에 관한 겁니다. 이건 진짜 비결인데 아무에게나 알려주면 안 되는데. 항상 수첩을 가지고 다녀야 됩니다. 생각은 어떤 그림자 같은 거에요. 버스를 타고 가는데, 목욕을 하는데 갑자기 어떤 생각이 스쳐가요. 이건 매우 중요한 생각이에요. 내가 지금 느끼기에. 아~ 이건 중요한 생각이다. 꼭 기억해 놔야 겠다. 집에 가면, 아까 버스를 타고 올 때 무슨 생각이 났었는데. 그게 뭐에 대한 생각이었더라.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만 기억에 남고 정작 무엇이었는지는 잡히지 않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수첩을 가지고 다녀야 돼요. 작은 수첩을. 무엇인가 스치고 지나가면 캐치를, 잡아야 돼요.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완벽한 문장을 만들지 않아도 돼요. 일단 메모를 해야 돼요. 그러고 나서 그 다음에 메모를 끝까지 중요한 단어를 메모한 다음에 그걸 다시 정리를 해봐요. 또는 친구랑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했는데 영화관 앞에 있는 햄버거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친구가 20분 늦겠다고 전화가 왔다 이거에요. 여러분 앉아서 뭐합니까? 멍청하게 앉아있거나 오락기 있으면 오락을 한판 하든가 또는 뭐 PDA 같은 거 가지고 있으면 그걸로 누구한테 문자메시지 보내든가 뭐든지 하겠죠. 그 시간에 메모를 해보세요.
글쓰기의 맨 마지막 단계는 스킬, 기술에 관한 겁니다. 이 기술은 누구에게 강의를 들어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많이 써볼 때에만 느는 겁니다. 많이 써볼수록 빨리 쓰게 돼요. 많이 써볼수록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쓸 수가 있습니다. 많이 써볼수록 더 풍부한 어휘를 출력시킬 수가 있고, 많이 써볼수록 더 다양한 표현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 햄버거 집에 앉아서 자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묘사해보세요. 지금 저 앞에는 꽃병이 놓여있다. 이 꽃병은 이렇게 이렇게 생겼는데 예쁘다. 그 위에는 무슨 색깔 꽃이 예쁘게 꽂혀 있다. 어떤 커플이 지나가는데 너무 야하게 허리를 끼고 지나가서 눈꼴이 시었다. 무엇이든 좋아요. 기록해야 됩니다. 제가 한 스물여섯~일곱 돼서 내가 글을 좀 잘 쓴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비로소 그 훈련을 스스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이제 시국이 요즘처럼 평화롭지가 않고, 뭘 잘못 쓰면 잡혀가고 그럴 때라서 쓰고 나서 며칠 지나면 다시 불태워 버리고 불태워 버리고 끊임없이 쓰는 훈련을 스스로 하는 거에요.
여러분이 메모장을 가지고 다녀야 돼요.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어떤 것, 어떤 상념, 어떤 단상, 잡야야 됩니다. 기록되지 않은 사상은 사상이 아니에요. 기록되지 않은 논리는 논리가 아닙니다. 반드시 글로 기록한 것만이 확실하게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괜찮아요. 졸고 있는 친구의 뒷모습을 묘사해도 좋고. 나는 남자친구, 여자친구, 이성친구가 없는데 그게 있는 친구에 대한 질투심을 적어도 좋고. 그 어떤 것이든 상관없어요. 그것을 절절하게 자기 생각 그대로, 그대로 옮기는 훈련을 하루에 20~30분 짬 내서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일주일이면 하루 30분이면 210분 차이가 나게 됩니다. 일주일이면 210분 차이가 나게 됩니다. 한 달이면 약 800분 정도의 차이가 나게 돼요. 800분이면 몇 시간입니까? 13시간이잖아요? 14시간. 한달에 13시간, 14시간씩 글쓰기 훈련을 하는 사람과 그것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라는 것은 약 1년이 지나고 나면 글쓰기에 관한한 초등학생과 대학생 정도의 차이가 나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꼭 권합니다.
오늘의 결론, 첫째 좋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라.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1, 2부. 무지하게 재미있습니다. 조금 야한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두 번째, 예쁜 고운 제대로 된 우리말을 써야 한다. 그걸 알아보는 능력을 길러야 되고, 나쁜 잘못 써진 우리말을 볼 때에도 그것을 알아보고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여러분이 가져야 된다. 세 번째가 글을 쓸 때에는 이것이 확정된 사실에 관한 것인지 나의 주관적 판단에 관한 것인지를 구별하고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돼 있는 문장에 관해서는 반드시 그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는 습관을 길러야 된다. 네 번째 끊임없이 기록하라. 메모지를 들고 다녀라. 이 네가지만 여러분이 오늘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하시면 앞으로 1년만 그렇게 하면 여러분의 글쓰기 능력은 지금 상태보다, 양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10배 이상은 그렇게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제가 확언, 장담해드립니다. 일단 해보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되면 저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