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14. 07:29ㆍ라이프/잡문집
photo/sabrina campagna words/zet
윽, 이게 무슨 냄새야. 화장실에 가려고 방문을 열었더니 매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눈 앞이 뿌옇다. 화마에 휩싸인 초가 마냥 연기로 뒤덮여 있다. 가스레인지로 가보니 홀랑 타버린 주전자 속 빨간 재가 무서운 눈으로 나를 원망하며 번뜩인다. 노바리 노바리 원츄♪ 전화벨이 울린다. 이웃 블로거다. 자신을 음해하려는 사람이 있다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도와주고 싶다. 어디보자,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해줄수 있는게 없다. 츠지 히토나리처럼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데 말을 바꿨다. 힘내, 다 잘될거야. 역시 난 범인(凡人)인가 보군. 아이팟의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음악을 눌러 재생목록을 본다. 랜덤재생을 눌러볼까. Catpower의 the Moon이 흘러 나온다. 어쩜, 너무 좋다. 잠시 누웠다. 기분나쁜 냄새가 문틈 사이로 삐져 들어온다. 추운데. 창문을 열었다. 일어나기 귀찮은데. 냄새도 밖이 추운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념했다. 그래, 너도 따뜻한 곳이 필요했을테지.
블로그 관리자를 만나러 Q를 눌렀다. 악플이 달렸다. 오랜만이다. 악플이라니. 이젠 악플만 봐도 연령이 짐작될 정도다. 논리는 안드로메다로 보낸 빈껍데기 악플은 생각없는 어린 학생들의 전유물이다. 자신감이 없거나, 자아가 약하거나 둘 중 하나다. 아니면 외로웠나 보다, 이 녀석. 머리로는 이해하는<척>하지만 욕설이 들어간 악플을 보고있자니 화가 난다. 그놈의 면상에다 얼음파운딩을 날려주고 싶다. 왠지 그러고 나면 지금 내 마음속의 모든 찌꺼기들이 누런 땀으로 시원하게 배출될 것만 같다. 에휴 그냥 놔두자. 악플을 주무기로 하는 키보드 워리어는 힘이 없으니. 손가락만 60억분의 1일테지. IP를 잠깐 봤다. 이걸 캡쳐해 둘까 약 3초간 고민했다. 결론은 삭제. 그냥 없던 일로 해주련다. 홍어 좆까지 신경쓸 마음의 여유가 없다. 아참, 홍어에겐 미안하다.
쾅! 쾅!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이 아저씨도 우울한가보다.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물건을 획 넘겨주고 간다. 마치 친절기사 추천을 한번도 못받아 삐져버린 열여덟 택배알바 마냥. 상자를 열었더니 책이 나온다. 지인이 서평을 부탁했던 책이다. 마감해야 할 원고가 있어서 서평을 써주지 못했었는데 내가 뭐가 이뻤는지 책을 보냈을까. 어디보자. 읽어야 할 책이 태산이다. 당장 내일은 위드블로그 리뷰글을 등록해야 한다. 띵동. 문자가 왔다. 서평을 등록해 주세요. 네, 그럴게요. 주절거려봐도 메아리는 없다.
거울앞에 서서 햄릿이 되어본다. 여행을 가느냐 술을 마시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역시 난 성인 군자는 못 되나 봐. 곧 죽어도 안 된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도 다 쓰고 이젠 없다. 창문 밖으로 얼굴을 디밀었다. 하늘은 있는데 달은 없다. 내 맘을 달래줄 달빛은 아직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