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6. 19:32ㆍ라이프/소탈한 여행기
미술이 문학을 만났다고? 제목 참 거창하다. 오전에 부랴부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 관람권을 예약하고 12시 전시를 보러 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스러웠다. 동시대 문인들과 그와 연결된 작품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80년대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하면 얼추 느낌이 전해질 것 같다. 날씨까지 우중충하니 이건 뭐, 전시를 마치고 유명한 와플 맛집에 들러 와플도 먹고 오려고 했는데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곧바로 잡으로 돌아와야 했다.
미당 서정주라는 시인에 대한 평이 워낙 자자해 책을 사려고 몇번이고 시도했으나 늘 재고가 없어 실패했다. 한국 시인 중에 가장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구사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전시장에 서정주 시인의 글이 곳곳에 보였다.
"공자나 도스토예프스키에게도 그러했듯이 내게도 아직 잘 풀리지 않는 한 가지 서럽고 까마득하기만 한 의문이 남아있다. 그것은 그 생김새나 재주나 능력으로 보아 훨씬 더 오래 살아주어야 할 사람이 문득 우연처럼 그 목숨을 버리고 이 세상에서 떠나버리는 일이다. 유난히도 시골 소의 여러 모습들을 그리기를 즐겨 매양 그걸 그리며 미소 짓고 있던 그대였으니, 죽음도 그 유순키만한 시골 소가 어느 때 문득 뜻하지 않게 도살되는 듯한 그런 죽음을 골라서 택했던 것일까?"
- 서정주, '진환 작품집', 1983
그 중에서도 위의 글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갖가지 상념에 사로잡혀 잠시 멈춰섰고 주변에서 목격한 죽음들이 떠올랐다. 마음의 혹을 떼러 갔다고 외려 혹을 달고 왔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작품이다. 김환기 화가의 달밤으로 1951년에 그렸다고 한다. 서정주 등 수많은 시인과 친교를 맺었다고 한다. 그림을 보아하니 나도 그 시대 김환기 화가 옆에 있었다면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예민해서 그런건지 날씨가 내 마음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흐린 날씨는 먼저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흐리게 한다. 다음으로 내 마음에 스며들어 우중충한 기류를 형성한다. 급기야 머리속까지 들어와 구름을 만들고는 휘휘 저으며 기분을 망쳐놓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