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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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서점
어릴 적 전주에 살았는데 엄마 손을 잡고 서점에 갔다. 1990년대 초반 전주에는 홍지서림이 있었다. 당시에는 홍지서림이 전주 지역을 대표할만한 대형서점이었다. 엄마랑 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는데 주로 '으악 귀신이다', '공포특급' 같은 공포-미스터리류의 책을 좋아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책보다 노래 가사에 집중했던 것 같다. 시스템 다이어리에 발라드 가수들의 노래 가사를 적었다. 그 나이대 친구들도 나처럼 감수성이 풍부했는지 가사집을 빌려달라고 요청하는 친구가 많았다. 그렇게 몇몇 친구들끼리 가사를 돌려 보며 낭만적으로 살았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당시에는 한국문학 보다 영미문학을 읽었다. 영문을 읽으면 왠지 더 있어 보이고 멋져 보이는 게 있었다. 그 때 역시 문과 졸업 후 취업 상황이..
2023.07.06 -
비행기로 다녀온 서울여행 1박 2일
서울에 다녀왔다. 13년간 서울에서 살았던 터라 대부분의 풍경은 낯이 익었다. 과거에 썸을 탔던 누나를 만났는데 하필이면 내가 즐겨찾던 홍대 근처에서 만났다.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내려온지 6개월이 넘었는데 홍대에서 저녁이 되자 마을버스를 타고 과거에 살던 성산동으로 마을버스를 탈 뻔했다. 홍대와 합정은 몹시 익숙한 장소였다. 회사 동료에게 주말에 서울에 간다고 얘기했더니 비행기를 타보라고 했다. 광주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1시간이면 서울에 갈 수 있고 KTX보다 운임도 저렴하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KTX는 물론이고 ITX새마을 기차요금보다 더 쌌다. 네이버 검색으로 진에어편 왕복 항공권을 예매했고 그렇게 서울여행의 막이 올랐다. 처음 방문한 광주공항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붐볐다. 서울행 비행기도..
2021.10.17 -
강릉으로 혼자
내일 아침이 되면 집 밖을 나설 거야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갈 거야 서울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삼천 원짜리 호두과자를 사고 한 개만 먹을 거야 편의점에서 커피 우유를 사고 승차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갈 거야 마스크를 낀 아주머니에게 참치 꼬마김밥을 달라고 할 거야 아침 식사를 비닐봉지에 넣은 채로 자박자박 걸어갈 거야 기차 안에 앉으면 창가 자리에 앉아 찰칵 사진 찍을 거야 사진이 잘 찍혔는지 보고 마음에 들면 너한테 보내줄 거야 새로 산 중고 책을 왼손에 펼쳐 들고 창밖 풍경과 종이를 번갈아 바라볼 거야 유리창 너머 산과 들판을 보며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을 더듬을 거야 강릉역에 도착하면 우와 강릉이다 속으로 소리치며 피식 웃을 거야 흐릿한 하늘이 나를 안목해변까지 걷도록 안내할 거야..
2020.10.18 -
조지 오웰 <난 왜 글을 쓰는가>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 1984로 유명한 세계적인 소설가의 이름이다. 나는 을 몇 장 읽다 말았다. 난 조지 오웰의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재밌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펭귄북스에서 나온 조지오웰 에세이 원서가 있다. 주황색 책인데 책의 디자인과 재질도 고전적이면서 예쁘게 잘 나왔다. 관심이 있으면 서점에 들러보길. 책에서 솔직하고 통찰력이 돋보이는 문장을 발견했다.1946년에 쓴 Why I Write(난 왜 글을 쓰는가)라는 제목의 산문이며 다음과 같은 문장이 담겨 있다. "Writing a book is a horrible, exhausting struggle, like a long bout of some painful illness. One would never undertake such a thing..
2020.09.27 -
manner
she is an American English teacher her hair loss has been severe since childhood according to her mouth she wears a bandana on her head i went to a bar a little far from Konkuk University Station with her darn, it's self service-bar here i hate self-service though she said with an awkward smile she's teaching young children in Gangnam she wants to learn Korean she met a Korean man on Tinder as s..
2020.09.13 -
문장수집 5 백은선 에세이 <연재를 시작하며>
백은선이라는 이름의 시인을 지난밤까지 만해도 몰랐다.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웹진을 발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이트에 접속해 이것저것 둘러봤다. 유명 작가들이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었다. 작가들이 자신의 글을 연재하기에 앞서 자신의 소회를 담은 가 좋았다. 시작글을 쓸 적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기대됐고 작가의 마음상태를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백은선의 에세이글 제목 는 자아 깊숙한 무의식의 영역을 건드렸다.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백은선 에세이 시작글 를 읽고 파르르 떨었다. 나랑 비슷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시작글에 뺄 글이 없으므로 통째로 옮겨본다. 선한 것을 믿고 싶지만 대체로 불신하기를 좋아하며 아름다움보다 추함에 끌리곤 한다. 가능태를 따져보는 것을 습..
2020.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