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 정희재

2017. 2. 27. 00:09라이프/책&작가 평론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제목이 참 근사하지요?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등을 쓰다듬어주는 책입니다. 책을 읽어내려가며 나중에 또 보고 싶은 구절에는 밑줄을 그었어요.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 버릇에도 사연이 있지요. 함부로 쏜 화살(이 책에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젊은 날의 치기를 표현한 근사한 말이죠.)과도 같던 20대의 어느날,  뜨겁게 연애를 했어요. 여자친구는 어느 잡지의 에디터였는데 늘 손에 책을 쥐고 다녔고 집에 따로 서재를 마련해 둘 정도로 책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습니다. 그녀는 책에서 좋았던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었더랬죠. 여자친구의 독서습관이 자연스레 제 몸에 벤 거에요. 이 책은 이런 방식으로 저의 과거와 현재에 말을 걸어온 책이기도 합니다.


*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http://www.yes24.com/24/Goods/35737419?Acode=101


아래의 글귀는 제게 꼭 필요했던 말이었습니다. 사랑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저 자신을 지치게 만들었거든요. 어느 스승이 작가에게 한 말이 어찌나 저에게 하는 말 같던지요. "사랑받으려 하면 괴로움이 생겨날 뿐입니다. 반면 사랑하려 하면 충만이 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바로 서기 때문이죠."라는 글이 특히 좋았습니다.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랑, 그래서 영혼의 가장 높고 바람직한 경지라고 헤르만 헤세가 말했던 바로 그 우정. 세속의 사랑이 총천연색 화면에서 출발했다가 점점 흑백 화면으로 변해 가는 것이라면, 우정은 흑백에서 시작해 해가 갈수록 색채가 뚜렷해진다. 그러면서도 시간 앞에서 돌이킬 수 없게 훼손되기 쉬운 사랑보다는 은은하고 담백하다. 우정은 사랑은 사랑이되 그야말로 담백한 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난 주에 친구네 가족이 광주에서 올라왔습니다. 친구녀석이 전화를 걸어 "혼자 있으면 우울할까봐 지금 간다"고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온다는 것이었죠. 친구랑 술도 마시고 덕수궁도 가고 잠시나마 따뜻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짝궁이었던 녀석이고 쿵짝이 참 잘 맞는 친구에요. 이 글귀를 보면서 제가 지쳐서 쓰러져있을 때마다 곁에 있어준 그 녀석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돈과는 바꿀 수 없는 친구,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게 감사한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갑자기 욘석을 만나서 소주한잔 하고 싶어집니다.



여행에 관한 글귀도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여행지에서는 입에 맞는 한 끼니의 식사, 지친 몸을 눕힐 수 있는 침대 한 칸, 마실 물 한 병, 따가운 볕을 가려 줄 모자처럼 사소한 것들만 충족돼도 그날치 행복의 눈금이 차오른다. 익숙하게 누리던 문명에선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라 있던 행복의 기대치가 발꿈치 밑으로 겸허하게 대려온다고 할까." 여행을 어쩜 이렇게 근사하게 서술할 수 있을까요? 행복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진 나머지 행복을 느낄 수 없던 저를 다잡기 위해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해안 도보여행을 떠나려고요!



가끔 서교동 북카페에서 열리는 독서모임에 가는데요. 아래의 문장은 어제 있었던 독서모임에서 멤버들과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어요. 한국사회는 비교하고 경쟁하는 문화가 너무 심하다는 말이 나왔고 서로 사례를 들며 열띤 토론을 이어갔지요. "남과 비교해 얻는 고통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약이 없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악한 생각입니다." 한국사회를 세 문장으로 정의한 것 같아서 씁쓸해지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과연 우리들은 서로를 비교하는 습관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이 책이 지친 제 영혼을 토닥토닥 달래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사느라 행복할 겨를이 없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행복을 끌어올리기 위한 마중물과도 같은 책이고요. 독자와 이웃분들에게도 읽어보라며 건네고 싶은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