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당일치기 여행기 "전기맨을 찾습니다"

2013. 8. 16. 00:12라이프/소탈한 여행기

울트라맨을 조금 닮았던 규만이

전주는, 중학교 시절의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라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당시 나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정규만이요, 별명은 전기맨이었다. 오른 목 부위 위에 손가락 두개를 올려놓고 어딘가를 무심코 지켜보던 규만이는 한마디로, 아니 두마디로 '조용하고', '속 깊은' 친구였다. 한번은 그에게 왜 손가락을 목에다 대고 누르고 있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하는 게 수명을 단축시키는 방법이라고 설명해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규만이에게 털어놓지 못할 어려운 사정이 있었던 게 분명한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지 벌써 10년은 족히 넘었지만 어렴풋이 규만이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얼굴에 상처도 많았고, 좀 마른 체격이지만 야무진 인상을 가진 친구였다. 군대를 가기 전에 시를 써서 보내줬는데 그 내용이 너무도 감명깊고, 어른스러워서 부모님도 놀라셨을 정도였다. 군입대 이후 연락이 끊긴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무얼하고 지내는지 정말 궁금하다. 친구에게 소홀했나 싶기도 하고, 어떻게든 더 빨리 연락을 취했어야 하는데, 나란 놈도 참 무심한 녀석이라는 생각에 속상하다.

부모님을 따라 타지로 이사하고, 고등학교를 전주에서 떨어진 곳에서 다니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락이 뜸해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연인관계 불변의 법칙'은 친구관계에서도 그대로 작용했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보고싶은 마음이 들어 구글링을 했다. 아뿔싸! 우리나라에 전기맨이 이토록 많을 줄이야. 정규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페이스북에서 찾아봐도 마찬가지였고.

'80년생 규만이', '전기맨 정규만', '전기맨 전주' 등 갖은 검색어를 동원한 끝에 결국 진짜 전기맨이 작성한 글로 보이는 카페 게시물을 발견했다. 전주공고풍물동아리라는 이름의 카페였다. 왜 카페에 보면 자신의 프로필을 소개하는 코너가 한개씩 있지 않은가. 자신의 별명이 전기맨이고 시를 좋아하며 방안에 카셋트 테잎이 많다고 되어있는 걸 보니 틀림없이 전기맨이 남긴 흔적이었다. 냉소적인 문체 역시 전기맨의 것이 틀림없었다.
 
카페 게시판에 전기맨을 찾는다는 글을 연락처와 함께 남겨두었는데, 오늘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조회수는 12회에 달하나 아직 그 누구로부터의 연락도 없다. 아무래도 졸업한지가 십수년이 흘러버려서 지금 카페 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그의 소식을 전해듣기 힘들런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친구를 찾고 싶은 마음이 하늘에 닿아 꼭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주 당일치기 여행기

KTX를 예매하려고 보니, 이미 전주행 일반석은 매진이었습니다. 특실도 거의 매진이었는데 운좋게 예약을 취소한 분이 계셨는지, 좌석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석은 좁은 공간 때문에 불편했는데 특실은 넓직하니 여유공간이 많아 정말 좋더라고요. 돈이 좋긴 좋아~요.



용산에서 출발해 전주역에 도착하자 이른 시간임에도 여행자들이 꽤 많이 보였습니다. 전통적인 양식의 건물이 정말 마음에 들었고, 전주 외에도 전국의 역사(驛舍)를 모두 한국 고유의 느낌을 살려 새로이 건물을 짓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성있는 건물을 찾는 것도 일입니다, 일.



역사 가까운 곳에 관광안내소가 있었고, 여행지침서들이 보여 하나 집어들었습니다. 관광안내소도 운치있고, 참 좋아보였습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 떠난 여행이었는데, 왠지 제가 졸업한 중학교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20년만에 들른 전라중학교는 많이 변하기도 했고, 그대로이기도 하더라고요. 건물은 좋아졌는데, 중학교 건물은 좋아졌는데, 주변의 건물이나 길거리는 20년 전 그대로였습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던 기억,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던 기억들이 떠올라 한없이 따뜻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가슴이 찡해져서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중학교 친구 전기맨의 주소나 연락처를 혹시나 알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교무과에 들렀는데, 그 때 졸업생들의 기록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서운했지만,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전주라는 지역이 그렇게 크지 않아, 택시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이번에는 전주에서 유명한 콩나물 국밥집이라는 현대옥 본점으로 가서 7천원짜리 콩나물 국밥을 시켜봤는데, 담백한 국물맛이 일품이었습니다. 날계란도 두개나 담아 주시고, 인심이 후하더군요. 한그릇 뚝딱하고 다시 행선지를 옮겼습니다.



풍남문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가족 단위로 놀러온 분들이 많더라고요. 사람 구경도 여행의 기쁨 중 하나입니다.



전동성당에 도착! 한옥마을 들어가는 길에 전동성당이 보이더라고요. 장엄한 느낌의 서양식 건축물에 압도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경기전이라고 하는 곳에 들러 구석 구석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지역민들에게는 5백원, 타지에서 온 여행객들에게는 1천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으니 참고하세요.



고즈넉한 분위기의 한옥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군데 군데 뻗어있는 나무들도 운치를 더했습니다.



경기전에서 바라본 전동성당입니다. 전동성당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해외에 있다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전주한옥마을로 입성!



기념품샵이라던지, 음식점들이 영업을 하는 건 좋지만, 영업소 에어컨 보조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한옥마을을 뜨겁게 만들어 썩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주의 선비촌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언덕에 올라 바라본 한옥마을입니다. 좀더 볼거리를 늘리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옥마을인지, 한옥쇼핑타운인지 헷갈릴 정도로 음식점과 커피숍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서 있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남기는 글이니 오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팥빙수가 유명한 외할머니 솜씨집입니다. 전주 여행 후기를 읽어보면 꼭 등장하는 맛집들이 몇개 있더라고요. 외할머니 솜씨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땡볕 더위에도 늘어선 사람들을 보면 보통 인기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죠!



날이 너무 더워서 비맞은 생쥐마냥 몸이 젖어 커피숍에 들러 쉬기로 했습니다. LA 다저스 류현진의 선발 경기가 있는 날이었고 노트북을 챙겨갔습니다.



우리나라 참 좋은나라라고 느끼는게 대부분의 커피숍에서 와이파이를 지원하는 건데요. 시원한 자몽에이드를 한잔 들이키면서 LA 다저스 경기를 관람하는데 천국이 따로 없더군요. 날이 너무 더우니까 여행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아지더라고요. ㅋㅋ LA 다저스의 모든 경기는 유튜브 SPOTV에서 시청하실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SPOTV 유튜브 채널 http://www.youtube.com/user/spotv)



한옥마을은 생각보다 볼 게 없어서 남부시장으로 갔습니다. 남부시장 청년몰 입구인데, 날이 더워서 그런지 2층 커피숍에는 손님이 많아 좌석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업인 문전성시 프로젝트라고 소개글이 적혀있었는데요. 문화부 어느 부서에서 진행하는 사업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저도 업무 때문에 매주 화요일마다 문화체육관광부 청사에 방문하는데, 과연 어디서 하는 사업일까요?! 젊은 청년들을 지원하는 사업이라는 글귀를 보니, 문화부 소속 공무원은 아니지만, 뿌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청년몰의 모토가 적혀있는 어느 가게 셔터를 담았습니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살자" 라니 정말 좋은 글귀이자 명언입니다.



청년몰을 나와 남부시장의 풍경을 구경했습니다. 시장냄새가 참 좋더라고요.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쾌쾌한 냄새가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국밥집, 분식집, 피순대집이 보였지만, 이미 점심을 먹은터라 그다지 당기지는 않았습니다. 조점례 피순대만 바글바글하고 나머지 음식점들은 썰렁한 모습이 쓸쓸해보였습니다.



젓갈냄새는 오래 맡고 있으면 싫어지겠지만, 시장에서 잠시 맡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1박 2일을 계획하고 떠났던 전주여행이었는데, 생각외로 볼거리가 많지 않아 당일 여행으로 마무리하고 광주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너무 더워서, 많이 걷는 여행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던 하루였습니다. 날씨가 조금만 선선해지면 커플끼리, 가족끼리 가볼만한 여행지라는 생각입니다. 늘 그렇듯, 너무 많은 기대는 금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