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좋다가 나빠진 토익 890점 성적발표 후기
"10점만 더 맞았어도..."
2008년 봤던 토익 시험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어 지난달 26일 토익 시험에 응시했다. 오늘 오후 12시에 성적이 나왔는데 890점이었다. 기분이 좋았다가 다시 급 다운되는 점수였다. 왜 그렇냐구?
기분이 좋아진 이유
15년은 긴 시간이다. 블로그 덕분에 본격적으로 기업에 입사하여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그렇게 홍보마케팅 담당자로 10년 넘게 일했다. 그동안 영어 공부를 딱히 하지는 않았지만 미드를 즐겨봤다. 광고대행사에서 잠깐 일할 적에는 미국에서 온 피자헛 본사 직원들과 호텔에서 열린 워크샵에 참석했다. 당시 노란 눈의 미국인이 먼저 스피치를 하고 질문/답변 형식으로 간담회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영어로 실무담당자의 고충, 피자헛과 도미노 피자의 차이점에 관해 내 의견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옆에 있던 회사 대표 형이 그랬다. "니가 영국에서 유학하고 온 얘보다 영어 잘한다"고... 잠시 으쓱했던 기억이 난다. 문법에 상당한 오류가 있는 콩클리시면 어떠하리~ 결국 언어란 의사소통의 수단에 불과하며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할 줄 알고 상대가 내게 하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줄 알면 그만이다.
영어를 좋아해서 영어영문과를 전공했다. 2017년 즈음에는 청계천 근처에 있는 종로 파고다 학원에 가서 영어회화 수업을 등록하려고 했다. 원어민과 자주 소통하며 영어 실력을 늘리고 싶었다. 학원 등록을 하려면 레벨테스트를 봐야 한다고 했다. 덩치 좋은 미국형님과 인터뷰 형식으로 레벨테스트를 했다. 나는 취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미드 소프라노스에 관해 이야기했고 미국형님에게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가 실제로 보여주려 했던 것은 마피아의 생활모습도 있지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동시에 보여주려 했고 Family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미국형님은 레벨테스트가 끝나고 Advanced 레벨이라고 했고 Advanced를 위한 수업은 없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나름대로 영어공부를 하려고 종종 시도했으나 실제로 영어공부를 한 시간의 거의 없다고 봐도 되겠다. 그렇다면 890점은 적은 점수는 아니다. 오히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기분이 나빠지는 이유
10점만 더 맞았어도 900점이다. 두세문제만 더 맞았어도 된다는 얘기다. 시험을 보러 가기 며칠 전부터 모의고사 3회를 풀었다. 물론 시간도 체크하고 OMR카드 복사본을 출력해서 마킹까지 실제로 하면서 2시간동안 문제를 풀었다. 당시 3회차 모의고사에서 930점 가까운 점수가 나왔고 리스닝 테스트는 만점이 나왔기 때문에 이번 토익 시험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900점에서 10점이 부족한 890점이었다.
이 점수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점수다. 어차피 인천국제공항 등 메이저 공기업 행정직으로 입사할 작정이 아니라면 토익에서 950점 이상의 고득점을 받을 필요는 없다. 즉 950점 이상의 토익 점수는 사실 대중적인 점수도 아닐 뿐더러 이 정도의 점수를 요구하는 기업이나 직군도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실수를 반복한다. 900점에서 10점이 부족해서 890점이 나온 사람들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계속해서 800 후반에 머무르거나 오히려 더 낮은 점수를 받으며 돈만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번 시험을 통해 깨달은 교훈
교훈이라고 하니까 좀 거창한가? 이번 토익 시험에 응시하고 나서 한가지 배웠다. 모의고사와 실전은 많이 다르다. 이어폰을 꼽고 도서관에서 듣기평가를 실시하면 잡음없이 오롯이 문제를 들을 수 있어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왔다. 그러나 시험장인 중학교 교실은 많이 달랐다.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부산하게 다리를 떨고 밖에서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났다. 입에서 육두문자가 절로 나오면서 파트 3, 4에서 세트로 두개(6문제)를 못듣고 찍었다.
역시 실전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LC에 도움이 된 유튜브 채널
Soft White Underbelly라는 유튜브 채널이 토익 리스닝 테스트에 도움됐다. 모의고사에서는 거의 만점이 나왔는데 이 채널의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소프트 화이트 언더벨리 채널은 미국 뉴욕에 거주중인 사진작가가 길거리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구독자가 무려 450만명이다. 갱멤버, 마약중독자, 창녀, 트랜스젠더, 전직 마피아보스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각자 살아온 인생과 특정 직업에 종사하며 느끼는 점들을 이야기한다. 자막 없이 보는 것도 좋지만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고 어눌하게 말하는 사람도 종종 등장하기 때문에 영어자막을 켜고 보는 게 좋다. 그렇게 하면 영문을 빠르게 읽는 연습도 되니까 RC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듯하다.(라고 적기에 내 RC 점수는 좀 초라한 게 사실이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은 토익 900점 이상 받기를 격하게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