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으로 혼자
내일 아침이 되면 집 밖을 나설 거야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갈 거야
서울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삼천 원짜리 호두과자를 사고 한 개만 먹을 거야
편의점에서 커피 우유를 사고 승차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갈 거야
마스크를 낀 아주머니에게 참치 꼬마김밥을 달라고 할 거야
아침 식사를 비닐봉지에 넣은 채로 자박자박 걸어갈 거야
기차 안에 앉으면 창가 자리에 앉아 찰칵 사진 찍을 거야
사진이 잘 찍혔는지 보고 마음에 들면 너한테 보내줄 거야
새로 산 중고 책을 왼손에 펼쳐 들고 창밖 풍경과 종이를 번갈아 바라볼 거야
유리창 너머 산과 들판을 보며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을 더듬을 거야
강릉역에 도착하면 우와 강릉이다 속으로 소리치며 피식 웃을 거야
흐릿한 하늘이 나를 안목해변까지 걷도록 안내할 거야
안목해변까지 걸어가야지 했다가 다리 아파서 그만 버스를 탈거야
안목해변에 도착하면 화장실에 갈 거야
혼탁한 도시에서 마신 기운을 몸에서 흘려 버릴 거야
안목해변에서 책을 깔고 앉아 당분간 파도 소리를 들을 거야
바닷물 바라보며 주책없이 경치에 빠질 거야
파도소리가 지겨워지면 양말을 벗고 해변을 따라 걸어볼 거야
발가락과 양말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고 양말을 신을 거야
솔방울이 내려앉은 길을 따라 걸어갈 거야
군부대 초소가 나오면 잠시 멈춰 해변으로 돌아 바닷냄새 맡을 거야
강문해변에 도착하면 뒷골목으로 걸어갈 거야
지난 강릉에서 들렀던 카페를 흘깃거리며 미소지을 거야
경포해변에 다다르면 그네에 앉아 바다와 조우할 거야
과거의 여자가 떠올라 잠시 애틋한 마음 들 거야
다시 연락해볼까 하다가도 다시 만나도 잘 안 되었지
우리는 인연이 아니었지 하며 조금 더 슬퍼질 거야
이병률의 산문과 경포해변 지평선을 번갈아 읽어볼 거야
갑자기 무료해지고 강릉역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거야
강릉역행 버스에 몸을 실어볼까 강문해변으로 걸어갈 거야
늦어도 상관없지 바다 냄새 맡으며 걸어갈 거야
택시가 보이면 손을 흔들어 택시에 오를 거야
택시기사가 푸념을 늘어놓으면 웃어줄 거야
강릉역에 도착하면 휴대폰 배터리 충전할 거야
안내 데스크 직원이 장애인 휠체어 충전기에 충전하라고 몰래 귀띔해줄 거야
편의점에 들러 맥주캔과 안주를 살 거야
비행기에서 그랬던 것같이 KTX에서
설레는 마음 하나 허니버터아몬드 하나 맥주 한 모금
찬찬하게 입에 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맛볼 거야
집에 돌아와 잠시만 그리워할 거야
혼자여서 충만한 시간이었다고
또 다시 오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