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염탐기
부모님께 서울로 올라오라며 늘 이야기하는 곳이 미술관이다. 서울에는 그 어느 도시보다 풍성한 미술관이 있다. 전시도 그러하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문을 닫은 줄 알은 미술관들이 여전히 운영되고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모두 예약하고 관람할 수 있다.
오늘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갔다. 경복궁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집회가 있는지 경찰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통제하는 경찰을 보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어느 커플의 대화가 그 상황을 잘 이야기해준다. "무슨 전쟁난 것 같아. 왜 이래?".
화창한 날씨 때문이었을까? 미술관 근처는 활기로 가득했다. 커플, 가족, 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 걷고 있었다. 한 폭의 그림이었다. 2시 관람을 예약했는데 조금 일찍 도착했다. 매표소의 직원은 2시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책을 가지고 갔는데 마침 잘 됐다. 벤치에 앉아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었다. 철학서에 소설을 끼얹었다고 하면 적절할까? 작가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기느라 진도가 안 나간다.
길게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관객을 구경하는 일도 재밌다. 평일 대낮에 커플끼리 미술관에 오다니, 낭만적으로 보였고 한 편으로는 부러웠다. 내 차례가 되자 표를 받고 입장할 수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파가 줄어서 그랬는지 관람료를 받지 않았다.
오늘 전시는 한국전쟁에 관한 그림과 사진이 주제였다. 전쟁으로 피난을 가는 사람들, 판문점, 참전 미군의 증언들이 작품이 되어 걸려 있었다.
1시간 조금 넘게 전시를 보고 1층에 있는 미술 도서관에 갔다. 책, 엽서, 양말 등 미술이 첨가된 상품들이 즐비했다. 요즘 글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볼펜이 눈에 들어왔다. 모나미 볼펜인데 귀여웠다. 4개에 3천원이니 가격도 무척 합리적이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려고 했는데 경찰관이 길을 막는다. "어디 가시나요?"라고 물었고 "교보문고 가려고요."라고 답했다. 그는 "오늘 교보문고 문 닫았습니다. 저기로 둘러 가셔야 해요"라고 정중히 얘기했다.
가까운 지하철 역은 경찰들로 막혀 있어서 삥 둘러 을지로 입구역까지 걸어야 했다. 전시는 좋았는데 길을 막고 있는 경찰들이 마음의 날씨를 흐리게 했다.
경찰이 길을 막거나 말거나 햇볕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