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수집 3 김원영 칼럼 <잘못된 삶>
변호사이자 장애학연구자인 김원영의 글을 읽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 여러 회사를 다녔고 남들보다 많은 선후배들을 만났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가장 젠틀했던 선배는 언론사에서 만난 팀장이었다. 평소 업무를 볼 때도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고 자신의 위엄을 무너뜨리며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런 모습은 신선함을 넘어 신기함으로 다가왔다. 전 직장에서는 누구도 이런 스타일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선배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점심시간이었다. 팀장이었던 선배는 팀원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광장시장에 갔다. 시골 시장에 있는 식당처럼 예스러운 분위기가 났다. 쇠로된 원형 테이블에 삼삼오오 둘러 앉았다. 우리는 업무의 고단함은 잠시 잊은 채로, 왁자지껄 웃을 수 있었다. 퇴사하고 몇번이고 선배를 찾아갔다. 만날 때마다 편안하게 나를 맞아주는 선배가 몹시 고마웠다.
이토록 각박한 서울에서 어떻게 저런 마음을 낼 수 있는 걸까? 그는 일종의 미스테리였다. 시간이 흘러 알게 되었다. 선배의 아들은 장애인이었다. 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의 마음을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알 수 없다. 다만 장애를 가진 자식을 키우는 과정이 절대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고통은 어떤 면에서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험난한 과정과 함께 살아가는 그는, 어느덧 모든 것을 초탈한 신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읽은 김원영 변호사의 글이 남일 같지 않다. 장애인도 나랑 똑같은 사람일 뿐인데 나는, 어떤 사람들은 왜 그들을 차별하는 것일까? 장애의 불편함과 차별이라는 역경을 딛고 변호사가 된 사람의 글이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문장들은 내 마음을 시보다 더 큰 소리로 두드렸다.
김원영 <잘못된 삶>
- "내가 태어나도록 그냥 두었으니 손해를 배상하시오."
- 모든 출산과 양육에는 재생산의 꿈이 얼마간 깃들어 있다.
- 자녀는 출산과 동시에 부모 앞에 나타나지 않고, 점점 부모의 기대나 예상, 통제범위와는 상관없는 경로를 흘러 하나의 개인으로 성장하고, 다양한 경험을 농축한 채 고유한 인격체로 부모 앞에 등장한다.
- 국가는 발달장애인을 알츠하이머 환자처럼 평생에 걸쳐 체계적인 사회보장시스템으로 지원하는 책임을 기꺼이 떠안아야 한다.
- 그런 사회에서는 잘못된 삶이란 있기 어려우므로, 부모의 죄책감도 자식의 부채의식도 모두 녹아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