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알바 생애 첫경험 후기

2021. 1. 10. 08:41삶/일상의 소중함

30 넘어서는 회사에 다니느라 알바를 못했지만 20대에는 다양한 알바를 뛰었다. 그래도 자식들에게는 늘 지원을 아끼지 않던 부모님 덕에 돈이 궁해서라기 보다는 인생경험 차원 + 뜨거운 혈기(도전 욕구) 때문에 이런 저런 일들을 했다. 혼자서 하기도 하고 친구랑 같이 하기도 했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알바가 있다.

 

레스토호프 서빙/설거지 알바의 추억

수능을 보고 나서 남는 시간에 알바를 했다. 내 인생 첫 알바였다. 오후에는 레스토랑 저녁에는 호프집으로 바뀌는 레스토호프였다. 부부가 사장이었는데 가게는 작아도 아기자기하고 분위기가 좋았다. 나는 서빙, 설거지, 쓰레기버리기, 청소 등 모든 일을 했다. 같이 일하는 조리 담당 아주머니가 유부녀였는데 가끔씩 나를 유혹했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내 뒤에 와서 나를 두 팔로 감싸 안고 "어머~ OO이는 어깨가 왜 이렇게 넓어? 피부도 까무잡잡하네..흐흐.." 이러면서 노골적으로 말했다. 순진했던 나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냈다. 한번은 주방 아주머니가 1층 중국집 사장 아주머니랑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1층 아주머니 눈탱이가 밤탱이였는데 들어보니 남편한테 맞았다고 했다. 손님이 많을 때는 동갑내기 알바생이랑 같이 일했는데 사모가 나를 부르더니 자꾸 돈이 없어진다고 나를 대놓고 의심했다. 다행히 사장님이 막아주셨는데 내가 볼 때는 동갑내기 녀석이 손버릇이 안 좋았던 것 같다. 옥상에서 잠깐 보자고 했다. 그 녀석에게 "너가 훔쳐갔냐?"라고 물어봤지만 당연히 녀석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넘어갔지만 나를 의심하는 사모가 정말 싫었다. 사모님과 반대로 사장님은 마음씨가 좋았다. 나보고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같은 거 꺼내서 먹으라고 하고, 회덮밥 같은 거 만들어서 먹으라고 했다. 마음씨가 고운 사장님이었는데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자로 살면서 건강히 계셨으면 좋겠다.

 

이 밖에도 전시해설(도슨트) 알바, 모터쇼 알바, 영어캠프 조교 알바, 백화점 행사 알바, 영상음악실 DJ알바 등 여러 알바를 했는데 노가다는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노가다를 뛰어보기로 한 것!

 

노가다 인력을 구하는 네이버 밴드에 방문해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판넬 조공을 구한다는 글을 봤다. 조공이란 곧 시다바리를 의미한다. 기공(기술자)이 뭐 좀 가져다줘, 이거좀 잡아줘라고 하면 돕는 역할을 한다. 담당자와 통화하고 다음날 오전에 출근하기로 했다.

 

다음 날 오전 7시에 만나기로 했다. 5분 전에 도착해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당산역 8번 출구로 나와서 쭉 걸어오라고 했다. 삼거리에 도착했는데 담당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건너편에서 담당자가 손을 흔들었다. 누가봐도 노가다꾼이었다. 후즐근한 옷차림과 깎지 않은 수염, 먼지로 뒤덮인 패딩점퍼까지 완벽했다. 그의 안내를 받아 함바집(건설인력들이 밥을 먹는 식당)에 들어갔더니 대여섯명의 노가다꾼과 식당 아주머니가 TV를 보거나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아침을 먹고 와서 의자에 앉아 있었고 담당자가 서류를 가져와 프리랜서 계약서에 사인하라고 했다. 옆자리에 오늘 처음 온 것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우리 셋은 근처 사무실로 이동했다.

 

다른 건설사에서 온 사람들 2명과 함께 총 4명은 간단히 서류를 작성하고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아있던 남성, 담당자와 함께 건설현장으로 이동했다. 당산역 근처에 빌딩을 올리고 있었다. 작업복이랑은 거리가 먼 내 복장이 우스웠는지 한마디씩 했다. 그 패딩 입으면 바로 옷 나간다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건설현장에는 먼지가 엄청나고 게다가 내가 맡은 작업은 유리섬유를 만져야 하는 일이었다. 건물 외벽에 보온재를 넣는 일은 준전공, 전공이 맡고 조공인 나는 보온재를 그들이 원하는 사이즈로 자르고 나르는 역할을 했다. 보온재의 소재가 유리섬유로 되어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가루들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오전에는 몰랐는데 오후가 되니 따갑고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담당자에게 이야기했더니 처음이라 그렇다, 나는 이미 노가다판에 오래 있어서 피부가 단단해졌는데 아직 노가다 피부가 아니라 그렇다며 괜찮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눈도 따끔따끔하고 미칠 것 같았다. 그래도 여기서 추노(건설현장에서 말없이 도망가며 일을 그만두는 일)할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오후까지 일을 마쳤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안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지만 감언이설에 너무 오바할 내가 아니지.

 

퇴근하고 집에 와서 샤워를 했다. 거울을 보니 눈에 하얀유리섬유가 눈꼽으로 맺혀 있었다. 엄청나게 큰 덩어리였다. 소매가 덮지 않고 있는 손과 팔에는 생치기가 보였다. 유리 섬유에 긁힌 흔적이었다. 가려웠다. 지금도 상처가 남아있고 가려운 곳이 있다. 평소에 운동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일은 그렇게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으나 몸이 상할 것 같았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고 그만하겠다고 했다. 

 

담당자랑 이런 저런 이야기도 했는데 아쉬웠다. 담당자는 나보다 5살 정도 많은 형이었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 부동산과 요식업 사업을 꿈꾸며 돈을 모으고 있었다. 말은 많았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또한 나랑 같이 온 동생도 형님~ 형님~ 하면서 예의를 갖추는 신사였다. 나보다 훨씬 현장 경험도 많고 인테리어 현장일, 장례식 사업까지 해서 야무지고 강단있어 보이는 사내였는데 싹싹하고 매너가 좋았다. 내게 자기 작업복을 가져다주겠다고 할 정도로 착했다.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의 80% 이상이 사람 때문이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그만큼 나랑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단 하루였지만 매너가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었기에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만 내 건강까지 버려가며 경험을 쌓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만하기로 결정했다.

 

생애 첫 노가다의 교훈

1. 노가다 초보는 판넬, 칸막이, 석고 작업은 피하자. 석면, 유리섬유와 같이 발암물질 혹은 발암물질에 준하는 유해물질로 인해 장기에 데미지를 입을 수 있다.

2.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내비추지 마라. 이건 노가다보다는 10년 넘게 회사생활을 하며 깨달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줄까봐 혹은 나는 솔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과도하게 자신에 관한 정보를 늘어놓는 것은 좋지 않다. 인간이란 자고로 자신을 위해서라면 남을 해치는 것을 우습게 아는 동물에 불과하다. 내가 상대에게 흘린 내 정보가 독이 되어 돌아온다. 입을 닫고 잘 들어주기만 해도 반 이상 먹고 들어간다.

3. 위험한 일은 빨리 그만 둬라. 대기업 건설현장이 아니다보니 비계(공사현장에서 고소작업을 위해 설치해놓은 작업판)도 허술해보였고 건물을 지지대 삼아 비계를 왔다갔다 하는 준전공, 전공을 보고 있으니 소름 돋더라. 나는 3층에서 작업했는데 보온재를 건낼 때 아래를 보면 아찔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아래는 보지 않고 작업해야 했다. 유리섬유에 내 몸이 반응하는 걸 보고 안 되겠다 싶었다. 13만원 벌려고 내 몸을 함부로 굴리다가는 병원비가 더 나가게 될 판이었다. 몸이 상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자.

4. 역시 어느 조직에 가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존재한다. 노가다판이라고 해서 인생막장들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성실하고 남을 해치지 않고 살아왔지만 뜻하지 않게 노가다판으로 온 사람들도 있다. 사업을 하다가 말아먹거나 당장에 돈이 급해 온 경우도 있다. 물론 도박이나 유흥에 찌든 하루살이 인생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은 걸러야 한다. 좋은 환경에도 쓰레기같은 놈들이 있는 반면 쓰레기로 가득해보이는 막장판에도 좋은 사람들이 있다.

 

노가다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