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6. 22:04ㆍ라이프/이것저것 리뷰
2017년 3월 27일 미국 뉴욕 맨해튼 소피텔 호텔 24층 객실에서 50대 남자가 뛰어내렸다. 펀드매니저 찰스 머피(당시 56세)였다. 엘리트의 극단적 선택으로 미국 금융계는 충격에 빠졌다. 모든 걸 다 가진 엄친아였던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초엘리트 코스 밟은 전형적인 엄친아
찰스 머피는 뉴욕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뛰어난 두뇌와 집중력으로 16세의 나이로 유수 대학 컬럼비아에 진학했다. 세계 1, 2위 대학 하바드와 MIT 대학원을 나왔다. 1985년에는 억대연봉으로 유명한 골드만삭스에 입사했다. 찰스 머피는 큰 키에 두뇌와 스펙까지 갖춘 엄친아(엄마친구아들) 그 자체였다.
업다운 심한 투자사 직원 커리어
골드만삭스에서 모건스탠리로 이직한 찰스 머피는 1990년대 닷컴 붐이 일자 회사를 나왔다. 신생 금융회사의 CFO(최고재무책임자)로 이직했다. 월급은 거의 받지 않고 자사주를 배당받았다. 회사가 상장하거나 매각되면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닷컴 버블이 급격히 꺼지면서 인생에서 큰 실패를 맛보앗다.
그로부터 약 10여 년이 지나 다시 기회가 왔다. 부자의 돈을 관리하는 페어필드 그린위치 그룹에 임원으로 입사했다. 이번에도 월급 보다는 배당금 수익을 기대했다. 런던에서 뉴욕으로 이사한 후 3300만 달러 고급 주택을 구입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페어필드 그린위치는 상장하지 못했다. 회사가 금융사기를 당했다. 또 한번 회사를 나와야 했다.
무리해서 구입한 집을 팔고 런던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찰스 머피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왔다. 사교 파티에서 만난 펀드기업 폴슨앤컴퍼니의 소유주를 만났다. 존 폴슨은 찰스 머피의 경력과 재능을 보고 고용했다. 찰스 머피는 보험사인 콘세코에 8천만 달러를 투자해 1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잭팟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AIG에 회사 분할을 제안했다. 경영진에 압박을 가해 이사직을 받았다.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 찰스 머피 인생 제2의 전성기였다.
고단한 생활에서 찾아온 우울증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게 인생이라고 했던가? 찰스 머피의 회사 실적이 나빠졌다. 주가가 모두 오른 상황에서는 투자 대상을 찾기도 힘들었다. 찰스 머피는 극심한 피로감을 주변에 호소했다. 공격적이던 자세도 소극적으로 변했다. 찰스 머피의 아내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결국 남편 찰스 머피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도록 했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약물을 복용하며 다시 활기를 찾았다.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회사에서도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생일 기념으로 가족끼리 스키 여행도 다녀왔다. 가족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했다. 회사에서 오전까지 일하고 오후에 소피텔로 간 찰스 머피는 호텔방으로 들어갔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엄친아 찰스 머피는 5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경쟁에 뛰어든 엘리트의 극단적 선택
높은 곳일수록 떨어지면 가속도가 붙어 충격이 큰 것처럼 사람도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추락할 때 충격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잘나가던 정치인, 연예인이 갑자기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권까지 노리던 정치인이 성추문에 휩싸여 극단적 선택을 한다. 미모에 인기까지 모든 걸 갖춘 연예인이 성추문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월가의 극단적 선택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경쟁하며 우수한 성적을 낸 엘리트들이 월가의 투자회사에 입사해 또 치열한 경쟁을 시작한다. 삼일동안 집에 가지 않고 계속 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통잔 잔고는 쌓여가지만 살인적인 근무강도와 과몰입으로 어느새 우울증에 걸려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패턴이다. 월가의 대형 투자사들은 미 정부당국의 요구에 따라 근무시간을 조절했으나 여전히 젊은 엘리트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뭐든지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한 법이라고 했다. 이 글을 읽는 분은 부디 자기 조절에 성공해 만수무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