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추천 이충걸의 필동멘션

2020. 9. 7. 01:01라이프/책&작가 평론

매일 아침 두 편의 칼럼을 읽고 좋은 표현을 따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글솜씨를 놓고 봤을 때 국내 남자 칼럼니스트 중에 김훈(소설가)을 따라가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작가 김훈이 내 글을 보면 서운할 수도 있으나 김훈의 글은 소설에서 보다는 짧고 힘있는 칼럼에서 빛난다. 김훈의 거리의 칼럼과 매일 아침 함께 읽는 글이 이충걸의 필동멘션이다. 이충걸은 GQ편집장으로 소설도 썼고 매일 글을 보는 게 일인 전문가다. 김훈이 사회 칼럼니스트라면 이충걸은 문화 칼럼니스트라고 하겠다.

 

이충걸 에세이스트

 

이충걸과 김훈의 글은 수평으로 양쪽 끄트머리에 있다. 상극이다. 김훈의 칼럼은 뾰족하고 이충걸의 칼럼은 말랑말랑하다. 김훈의 글은 거의 한 페이지가 넘지 않는 분량으로 짧은데 이충걸의 글은 길다. 너다섯 페이지가 넘어가는 글도 여럿 있다. 글의 스타일만 보면 이렇게 완전히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이렇게나 다른 두 필진의 글에도 공통점이 있다. 각자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충걸 편집장의 글은 무겁지 않아서 좋다. 가끔 중성적인 매력도 느껴진다. 글에 위화감이나 억지스러움이 없는 것도 좋다. 장담하건데 그는 분명, 나쁜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독특한 문체가 가끔 부럽게 느껴진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것보다 더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의 문장이라고 느껴질 때 더욱 그렇다. 오랜 세월 다양한 글을 읽고 쓰면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모습이 멋스럽다.

 

이충걸의 필동멘션에서 건져올린 좋은 표현들을 정리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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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은 나를 돌보는 법을 가르쳐 준다>

- 어느 호젓한 토요일 아침

- 숫양처럼 들이받는 저돌성

- 오래된 고독만큼 반갑지 않은 것도 없다.

- 늘어난 수명이라는 트렌드는 서로 공명하며 문화의 윤곽을 만든다.

- 예전의 삶은 흔히 지루하게 묘사되었다.

- 벌 받는 것 같은 출퇴근

- 침묵을 혐오하는 전자 무대는 자꾸 자꾸 코멘트와 포스팅을 원한다.

 

<‘읽지 않았으나 읽은’ 사람만 늘어났다>

- 모든 소비에는 죄의식이 따른다. 그러나 책 ‘쇼핑’의 비밀은 누구에게나 지지받는다는 것이다. 확실히 책만큼 고결한 척 세속적이며, 쓸모 없는 듯 능률적인 사물이 없다. 그러나 요리책을 보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진 않는다.

- 읽지 않았으나 읽은 인간만 늘었다.

 

<불친절하고 불결한 노포... 맛집은 그렇게 권력이 됐다> 

- 평생을 모르던 타인끼리 순식간에 형 동생이 됨으로써 세상에 내 편을 늘린 기쁨은 다시 만날 일도 서로 존재한 적도 없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당장 수그러들었지.

- 나는 상한 김밥 같은 마음으로 친구에게 물었다.

- 지나가던 사마귀도 웃겠지.

- 그러나 한국 노포의 최강 모델은 이것. 식당은 손님을 통제하고 손님은 식당에 굴종한다.

- 이런 풍경에는 조지 오웰의 맛이 났다.

- 이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순진한 판타지였다.

- 품위를 버리자고 서로가 조르는 이런 세상에선.

 

<부자들은 왜 샤넬 백을 줄 서서 살까>

- 우리가 잠든 사이 시계 바늘은 돌아갔다.

- 애면글면 하는 우리에게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 옷차림은 너무 검박하지만

- 그 옛날 비오는 거리가 비로소 완결되는 것이다.

- 이렇게 조촐한 사치의 형태는 힘든 시기에 찾은 최소한의 유예 같다.

 

<고양이를 갖고 싶다는 소원은 왜 반유토피아가 됐을까?

- 남의 집에 침입해 놓고 선인장처럼 건드릴면 찌를 태세라니.

- 몽롱한 아침에도

- 우리 사이에 댐이라도 쌓은 것처럼

- 고양의 불복종과 나의 굴종. 관계의 전복.

- 이런 엉뚱한 기회가 아니라면

- 온통 난해한 수학 공식 같았다.

- 뜻밖의 노련함으로 이 부숭부숭한 침입자를 다루었다.

- 결국 누구를 먹이는 행위만 한 사랑이 없을 것이다.

- 미안함을 전하는 말은 뒤따를 자격이 없었다.

 

<커피는 매일 마셔도, 읽지 않은 책 같은 기대를 준다>

- 미스테리는 거의 폭동 같았다.

- 모두가 머리 속에 커피에 대한 서정적인 에세이를 쓰는 사이, 소비자 선택과 속물 근성이라는 번잡함이 딸려 나온다.

- 사치가 가십용 과녁이 되지 않는 것은 오직 커피뿐이다.

- 반짝이는 유리를 두드리듯 기분좋은 소리가 났다.

- 방금 건조된 빨래처럼 달콤하고 메마른 냄새가 났다. 김이 나는 잔은 그렇게 그날 하루에 구두점을 찍었다.

- 커피는 낙천적이고 외향적인 친구 같다가 제 시간에 만나지 않으면 철 몽둥이로 현관문을 두들겨 대는 나쁜 친구로 변했다.

- 확실히 커피 농장을 탁자로 데려오는 일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어떤 풍자 같다.

- 유용한 환상이 남았다. 커피는 매일 마셔도 읽지 않은 책 같은 기대를 준다는.

- 동네 커피 집이 이렇게 늘어난 것은 커피가 삶의 배경 음악이 된 나 같은 사람 때문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