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여동 밀실 살인사건의 진실

2020. 3. 11. 20:17라이프/이것저것 리뷰

2003년 12월 29일 서울시 송파구 거여동의 아파트 7층에서 주부(31세)와 아들(3세), 딸(10개월)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퇴근 후에 집에 돌아온 남편이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현장은 말 그대로 기괴했다. 3평 남짓한 작은 방문 위에 걸린 빨랫줄에 아내 박씨가 목이 걸린 채로 죽어있었다.

 

송파경찰서 강력반 형사들의 출동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송파경찰서 형사(강력2반)들은 극단적 선택 사건 현장이라고 판단했다. 외부인의 족적이 없었다. 현관문은 잠겨 있었는데 열쇠는 집 안에 있었다. 침입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박씨의 몸에는 저항흔이 없었다. 타살의 흔적이 없는 점으로 미루어 형사들은 극단적 선택을 의심했다.

 

그런데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극단적 선택을 한 엄마가 아이들을 상식 밖으로 잔인하게 살해한 점이 이상했다. 아들은 보자기로 목을 감았고 딸은 머리에 비닐봉지가 씌워진 채로 사망했다. 또 박씨의 손에 종이 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1.5cm 정도 길이의 도배종이였다. 형사들의 촉은 무서웠다. 형사들은 타살의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폐쇄회로에 잡힌 고교동창 이모씨

CCTV 감식을 하는 중이었다. 이른 오후 엘리베이터 7층에서 내리는 한 여성이 발견됐다. 박씨의 고교동창 이모씨(31세)였다. 경찰이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숨진 박씨의 남편 옆에서 그 누구보다 격렬하게 울었던 여성이었다. 그녀는 박씨 가족들을 위로하는 모습까지 보여 경찰은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박씨의 남편 역시도 아내가 죽은 모습을 보고 놀라서 아내와 절친인 이씨를 불렀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소매 안에 넣은 손을 꺼내지 않았다. 경찰은 손을 꺼내보라고 했다. 이씨의 왼손에는 빨랫줄로 보이는 자국이 선명했다. 조사중이던 경찰은 이씨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집 화장실을 고치다 생긴 상처라고 둘러대던 이씨는 결국 범행을 실토했다. "내가 죽였어요.". 이씨는 소름돋게 나즈막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이씨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뻔뻔한 말을 이어갔다. 증거는 절대 찾을 수 없을걸요? 라고 했다. 경찰은 이씨를 긴급체포했다. 현행법상 48시간 이내에 증거를 찾지 못하면 이씨를 풀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씨 집에서 발견된 범행의 기록

경찰은 이씨가 살고 있는 자취방을 찾아 소지품을 샅샅히 뒤졌다. 이씨의 일기장이 보였다. 일기장에는 범행 며칠전부터 이씨의 세세한 행적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범행도구, 범행수법 등 치밀한 범행계획이 선명한 글씨체로 담겨 있었다. 2003년이 가기 전에 박씨를 죽여버리겠다는 글도 있었다. 이씨는 왜 절친했던 친구와 자식들을 모두 살해한 걸까?

 

사건기록에서 드러난 이씨의 만행

박씨는 살해당한 날 아이들과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리고 이씨가 들어오자 박씨와 아이들은 이씨를 환대했다. 중고교 동창 사이었던 둘은 2년 전 동창 찾기 커뮤니티에서 재회했다. 이씨는 박씨의 남편과도 금새 친해져 박씨의 자녀들은 이씨를 보고 이모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씨는 엄마(박씨)에게 깜짝쇼를 보여주자며 아이들을 현혹했다. 먼저 아들이 작은방에 가서 숨었다. 이씨는 박씨에게 준비를 마치는 동안 딸과 TV를 보고 있으라고 안심시키며 문을 닫았다. 준비했던 수건과 비닐봉지를 챙기고 방 안으로 들어간 이씨는 박씨 아들의 입을 수건으로 막고 보자기로 목을 감아 살해했다.

 

 

이씨는 태연하게 안방으로 돌아와 박씨에게 어릴적에 하던 숨바꼭질을 하자고 제안했다. 작은방에 아들이 있는데 준비가 다 끝났다고 하네라며 박씨에게 거짓말을 씨부렸다. 영문을 모르는 박씨는 딸은 안은 채로 이씨를 따라갔다. 이씨는 박씨의 얼굴에 치마를 씌웠다. 그리고 박씨를 거실쪽에서 등진채로 작은방 문앞에 서게 했다. "준비됐나요?"

 

이씨는 작은방 안쪽에서 빨랫줄 올가미를 넘겨 박씨 목에 걸었다. 이씨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 힘껏 줄을 당겼다. 문짝 너머 박씨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박씨는 안고 있던 딸이 혹시나 떨어질까 저항을 하지 못했다. 숨을 거둘때까지 왼손으로 든 딸아리를 꼭 잡고 있었다. 이씨는 엄마 옆에서 울고 있는 딸아이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워 살해했다. 범행을 마친 이씨는 태연하게 박씨의 핸드백을 챙겨 열쇠를 집어넣고 현관물을 잠근 채로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 있는 방범창으로 손을 집어넣고 핸드백을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완전범죄를 꾸미기 위한 수작이었다.

 

이씨가 털어놓은 범행동기, 진실은?

경찰 조사과정에서 이씨는 동창 박씨 인생은 너무 행복한데 내 인생은 비참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했다. 이씨는 시종일관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불평불만을 해댔다. 그러나 경찰조사 결과 이씨는 박씨의 남편과 내연관계에 있었다. 둘 관계가 들통나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었다.

 

2004년 7월 검찰은 이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교화와 개선의 가능성이 미약하나마 남아있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이씨는 이에 불복하여 반성문을 제출하는 등 항소와 상고를 이어갔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5년 3월 무기징역형을 확정했다.

 

질투란 참으로 무서운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