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최영오 일병 군대선임병 살인사건

2019. 11. 27. 08:54사건사고/한국사건

최영오 일병은 서울대학교 천문기상학과 4학년에 재학중 육군에 단기학보병(대학 재학중에 입대하면 복무기간을 줄여줬다고 함)으로 입대했다. 서울대학교 출신이라고 하니 못배워먹은 인간들이 얼마나 최영오 일병을 갈궜을지 생각만으로도 오싹하다. 인간의 질투란 무척 무겁고 냉정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엄친아 최영오 일병을 향한 선임병들의 집단 괴롭힘

잘생긴 외모, 학벌(서울대 재학), 여자친구까지 거의 모든 걸 갖춘 최영오 일병은 부대 내에서 밉상으로 찍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못생기고 여자친구도 없고 배운 것도 적은 선임병들이 얼마나 갈궜을지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대략 이 상황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 나와서 그것밖에 못하냐", "머리만 좋으면 다냐" 등등 별의별 꼬투리를 잡아 엘리트인 최일병을 괴롭혔을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하다. 1962년이었으니 그때는 구타가 거의 합법이라고 볼 정도로 군대 내에서의 구타에 대해 크게 문제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2000년에 입대한 나도 사소한 이유로 선임한테 구타를 당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는 오죽했으랴. 각종 컴플렉스로 무장한 선임병들에게 최영오 일병은 눈의 가시였을 것으로 보인다.

 

 

군부대 구타

 

여자친구와의 편지 들쳐보자 시정요청

최일병은 당시 여자친구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있을리 만무하기에 편지와 면회만이 여자친구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의 창구였다. 서울에서 여자친구에게 최일병 앞으로 편지가 계속 날아오자 같은 중대 정병장(22세)과 고상병은 최일병의 허락없이 편지를 뜯어봤다. 그리고 최일병에게 "사랑하는 영오씨 보고싶어서 이 밤도 잠 못 이뤄요"라며 사람들이 모두 있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놀렸다.

합리적이었던 중대장에게 해당 사실을 소원수리했고 중대장은 정병장과 고상병을 불러 주의를 줬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올 뿐이었다. 최일병은 선임병들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돌아오는 것은 일방적인 구타 뿐이었다.

일석점호에서 싹튼 살인의 동기

1960 초 7월의 어느밤 일석점호 시간이었다. 전 중대원이 집한한 자리에서 정병장의 선창에 따라 구령조정을 실시하기로 했다. 정병장이 "열중쉬어!" 라고 하자 최일병만 "편히쉬어"라고 소리쳤다. 

뚜껑이 열린 정병장은 "누가 그랬냐? 앞으로 나와!"라고 소리질렀으나 최일병은 모른척했다. 정병장은 최일병에게 다가가 "왜 나오지 않고 비겁하게 구냐?"라고 했고 최일병은 "잘못됐다"라고 사과했다. 정병장은 최일병에게 엎드려뻗쳐라고 소리쳤으나 최일병은 사과를 하는데도 왜 그러냐고 대구하고 항의했다. 정병장은 목봉을 들고 최일병을 쳤고 최일병은 목봉을 잡아 서로 싸움이 붙었다. 옆방에 있던 이상사가 달려와 그들을 제지했다. 

최일병은 막막했다. 사이가 좋지 않은 고참들과 같이 지내야할 시간을 생각하면 지옥같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총동원해도 바뀌지 않는 이 상황을 자신의 의지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이를 바득바득 갈며 잠에 들었다.

M1 소총으로 괴롭히던 선임병에 보복

다음날 오후 12시 35분경 사단사령부 연병장에서 전장병이 집합해 위문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따. 정병장과 고상병이 국기게양대 연병장쪽 무대를 보고 나란히 서있는 걸 목격한 최일병은 내무반으로 뛰쳐들어갔다. 이성을 잃은 최일병은 M1 소총에 있는 실탄 8발을 장전하고 들고 나와 그 둘을 등뒤에서 쏴버렸다. 정병장은 4발, 고상병은 3발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최영오 일병의 사형과 어머니의 죽음

 

군법회의 군사법부의 판단

초일병은 상사 살해혐의로 군법회의에 기소돼 사형판결을 받았다. 최일병의 서울대 동문들은 사형을 면하게 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대법원도 사형판결을 확정했다. 

최일병은 자신의 사형이 언제 집행될지도 몰랐다. 총살 집행 3시간 전에 형과의 면회에서 "다음 면회 때 엄마와 조카를 데려와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최영오 일병은 3시간 후인 1963년 3월 19일 총살당했다.

 

최영오 일병의 어머니는 아들이 사형을 당한 충격으로 한강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