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

2019. 11. 18. 20:23사건사고/해외사건

서울 도봉구 창동 다세대주택에 거주하던 부모님 아래 누나와 함께 자란 조승희는 성적이 좋고 쾌활한 누나에게 늘 콤플렉스를 느꼈다.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탓에 자신감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서민 가정이지만 부모님은 자식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한다. 조승희의 누나는 세계적인 대학 프린스턴을 졸업하고 펜타곤(미국방부)에서 일할 정도의 엘리트였다. 조승희의 부모님은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자식교육에 혼신을 다했다.

학교에 다녀오면 눈물을 흘리던 왜소한 동양소년

9살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간 조승희는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이는 조승희 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의 어린 학생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나타내는 행동양상이다. 조승희의 작은 체구와 과묵한 성격은 놀림을 사기에 충분했다. 영어도 하지 못했고 그런 조승희를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낙인찍고 특수교육을 받도록 했다. 조승희는 방과후 집에 돌아올 때마다 다신 학교에 가기 싫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부모님을 생각하며 꾹꾹 참고 학교생활에 적응라겨로 애썼다. 조승희는 수학과 영어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교사는 조승희를 다른 학생들의 모범으로 삼기도 했다.

 

조승희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집단따돌림

중학교에 입학한 조승희는 왕따를 당하게 된다. 지금도 백인의 동양인 차별은 심하지만 그 당시에는 더욱 심했을 게다. 중학생 급우들이 조승희가 동양인에 못생겼다는 이유로 심각한 인종차별성 왕따를 가한 것이다. 엄청난 스트레스는 분노가 되어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고등학생이 돼도 마찬가지였다. 조승희가 교실에 들어오면 물건을 던지고 욕을 했으며 발을 걸어 넘어뜨리며 대놓고 집단 따돌림을 했다. 조씨는 자신감을 잃고 늘 고객를 숙이고 있었고 불러도 대답이 없는 시한폭탄이었다. 그와 같이 수업을 듣던 백인들은 조승희에게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그를 조롱했다. 아버지는 조승희를 꾸짖기만 했고 조승희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점점 눈덩이가 되어 쌓여만 갔다.

왕따와 무시로 내면에서 자란 분노라는 이름의 괴물

조승희는 명문대 버지니아공대 영문학과에 진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이 많던 어머니는 아들이 프린스턴 대학에 갓으면 좋겠다고 이웃들에게 서운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과도한 교육열은 조승희 내면 분노의 몸집을 더욱 부풀리고 있었다. 대학 1학년에 경영정보학을 선택했으나 2학년이 되면서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궜다. 대학에 들어간 그는 내성적이며 겉도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그의 분노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조승희를 가르치던 교수는 조승희의 작문은 중오로 가득차 있었으며 극본은 무척 위험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출석자명단에 본인 이름 대신 물음표를 적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담당교수는 조승희를 자신의 문학수업에서 제외시켰다. 학교의 관리부서에 연락해 조승희를 경계하라는 지시를 내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담당부서가 조승희와 주변을 면밀히 조사했지만 타인에게 위협이 되거나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회신했다.

 

조승희의 망상과 여대생 스토킹

조씨의 룸메이트 코흐는 대학교 시절 조승희가 여학생을 스토킹했다고 한다. 조씨는 코흐에게 자신에게 젤리라는 이름의 여자친구(상상 속 인물)가 있으며 슈퍼모델 출신이라고 했다. 젤리와 사랑을 나누고 있다며 문을 열어주지 않은 적도 있다고 한다. 어느날 경찰은 조승희가 여학생을 스토킹한다며 신고를 받고 조씨와 룸메이트가 살던 방으로 들어왔고 코흐도 조승희를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조씨는 룸메이트 코흐에게 자살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코흐는 학교 당국에 조씨를 신고했다. 학교는 조씨를 정신감정 담당 위원회로 데려갔고 조승희는 극심한 우울증과 무감각증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는다. 조씨의 부인과는 관계없이 그는 버지니아주 정신건강센터에 수용되고 만다. 버지니아주 판사는 조씨가 외래환자로 성실하게 치료에 임한다는 조건으로 퇴원시켰다. 하루만에 풀려난 조승희의 저항심과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갔다.

조씨는 총기난사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NBC에 보낸 비디오 테잎 영상에서 선언문을 낭독했다. "너희는 오늘을 피하기 위한 기회를 수없이 많이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내뺄 수 있었지만 너희가 욕보인 내 형제자매들과 약하고 죄없는 동포들을 위해 행동한다"고 했다. "너희 때문에 예수처럼 죽는다"고도 했다. "목으로 쓰레기를 우겨넣는 것"과 같은 괴롭힘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었다.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행동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했으며 선언문 전문은 아래에 남겨둔다.

 

권총을 양손에 쥔 조승희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의 시작

2007년 4월 1일 오전 7시 15분 버지니아공대 기숙사 웨스트 엠블러 존스턴홀에서 탕하는 총소리와 함께 악하는 비명소리가 동시에 울려퍼졌다. 대학원생 라이언 클락과 학부생 에밀리 힐셔가 총에 맞고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둘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911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사건 발생 직전 피해자 에밀리 힐셔와 남친이 기숙사에서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는 학생들의 진술을 확보하고 치정에 의한 면식 살인으로 오판하고 만다. 불필요한 혼란을 막기 위해 비상경보를 발령하지 않았다. 

모자를 눌러쓴 조승희는 자신의 기숙사 하퍼홀로 진입했다. 그는 마치 이슬람테러집단 ISIS의 행동대원처럼 디카로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를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미리 녹화해둔 동영상 27개와 사진 42개를 DVD로 제작했다. 1,800자로 된 선언문이 적힌 종이도 함께 작은 상자에 넣었다. 우체국이 문을 연 9시 소포상자를 NBC 방송국으로 보낸 조승희는 강의가 진행중이던 노리스홀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은 조끼를 걸친 그의 복장은 마치 경찰이나 군인과도 같았다. 노리스홀에서는 여러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9시 12분 주출입구인 중문으로 들어간 조씨는 목제문을 닫고 배낭에서 쇠사슬을 꺼내 문손잡이 양쪽을 쇠사슬로 감아 학생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잠궈버렸다. 나머지 2개 출입구도 같은 방법으로 막아버린 조씨는 조악한 글씨로 "문을 열면 폭탄이 터진다"고 쓴 종이를 붙여뒀다.

9시 39분 조씨는 206호 강의실로 들어갔다. 권총을 양손에 차고 교단으로 다가가 교수의 머리에 총을 겨눈 조씨는 "Hi! How are you?"라고 읖조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머리에 총을 맞은 교수는 피를 뿜으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학생들에게 다가간 조씨는 조준사격을 시작했다. 강의실에 있던 14명 가운데 10명이 숨졌다. 207호 강의실로 자리를 옮긴 조씨는 또다시 학생들에게 조준사격을 시작했다. 복도로 뛰어가는 학생들을 쫓아 강의실을 따라나온 조씨는 복도에서 도망치는 학생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했다.

 

나치 홀로코스트 생존했던 교수

 

총기난사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인지한 205호 강의실은 학생들이 책상과 의자로 강의실 문을 봉쇄했다. 조승희는 205호로 진입하기 위해 문을 향해 돌진했으나 문을 열리지 않았다. 조승희는 화가 나 문을 향해 총질을 했지만 책상과 의자 그리고 문이 총알을 모두 막아줬다. 205호 진입에 실패한 조승희는 204호 강의실로 향했다. 77살 나치 유태인학살(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유명 교수가 온몸으로 강의실을 막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창문으로 뛰어내리라고 손짓하며 사력을 다해 막았다. 1명을 제외한 모든 학생이 창문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으나 조승희가 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총격을 당해 사망하고 말앗다.

9시 45분 조승희는 211호 강의실로 갔다. 총소리와 비명소리를 들은 학생들이 모여 문을 막았으나 조씨는 흥분해 몸을 던져 문을 밀어버렸다. 강단에 있는 여교수에게 다가가 머리에 총을 쏴버렸다. 또다시 학생들을 향해 조준사격이 시작됐다. 22명 중 11명이 죽었다.

 

노리스홀 앞에서 조사중인 경찰

 

10분 남짓한 시간에 총 32명 살해 

조승희는 9분 동안 170여 발을 발사해 교수 5명과 학생 25명을 살해했다. 211호 강의실로 다시 들어가 부상자들에게 총을 쐈다. 그리고 본인의 얼굴에 두발을 발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승희 선언문 전문

너희(You)는 오늘을 피할 수 있는 방법과 기회를 수없이 많이 갖고 있었다. 하지만 너희는 내 피를 쏟기로 결정했다. 너희는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었고 내게 다른 어떤 선택권도 주지 않았다. 그 결정은 너희의 것이었다. 이제 너희는 절대로 씻어지지 않을 피를 손에 묻혔다.

나는 그러지 않아도 됐다. 떠날 수 있었다. 나는 내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혹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너희가 욕보인 내 아이들과 내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다. 나는 그들을 위해서 그랬다.

너희는 그저 나를 괴롭히기 좋아했다. 너희는 내 머리 속에 암을 주입하는 것을 좋아했다. 내 가슴 속에는 공포를, 그리고 지금껏 내 영혼을 찢어놓는 것을 좋아했다.

너희는 내 심장을 고의적으로 파괴했다. 내 영혼을 갈갈이 찢어놓았고 내 양심을 고문했다. 너희는 그저 이것이 한 어린 희생양의 삶을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희 덕분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는다. 약하고 기댈 곳 없는 민중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무시당하는 동양인들의 우상이 된 조승희


너희는 누군가 너희 얼굴에 침을 뱉고 목으로 쓰레기를 쳐넣는 기분을 아는가?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기분이 어떤지 아는가? 한쪽 귀에서부터 다른쪽 귀까지 목을 잘리는 기분을 아는가? 산 채로 고문당하는 기분이 어떤지 아는가? 너희의 유희를 위해 조롱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며 죽어가는 기분이 어떤지 아는가? 너희는 평생동안 아주 조금의 고통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너희는 너희가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우리의 삶에 원하는 만큼의 절망감을 주입하고 싶어한다. 단지 너희가 그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너희는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졌다. 너희의 메르세데스(벤츠)로 만족하지 못했다. 이 망나니들. 너희의 금목걸이들로 만족하지 못했다. 
이 속물들.

너희의 신탁으로 부족했다. 너희의 보드카와 꼬냑으로 부족했다.

그 모든 방탕한 것들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너희의 쾌락주의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했다. 너희는 모든 것을 가졌다.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행동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