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키 데루히코 이치가와 일가족 살인사건

2019.11.10 17:44사건사고/해외사건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 세키 데루히코의 어머니는 그녀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질이 좋지 않은 남자와 결혼하여 세키 데루히코를 낳았다. 데루히코는 어릴적부터 운동신경만큼은 뛰어났다. 수영을 배우고 가라데와 야구를 수련했다. 데루히코의 아버지는 결혼 후에 본색을 드러냈다. 데루히코의 어머니와 데루히코를 틈만 나면 두들겨팼다. 질나쁜 아버지는 도박과 술에 빠져 지냈고 가정에서는 폭력을 행사하는 최악의 가정환경을 제공했다.

데루히코와 어머니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이혼했다. 데루히코는 방황했다. 덩치가 커지면서 어머니와 남동생을 폭행했다. 아버지에게 폭행이라는 악행을 물려받았다. 고등학교는 2학년 때 자퇴했다. 외할아버지만큼은 데루히코를 감쌌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외할아버지 가가에서 일하던 데루히코는 6개월만에 회사를 그만둔다. 골목에서 시비가 붙은 불량배를 일방적으로 구타하고 금품을 강탈하기도 했다. 마치 폭주기관차처럼 지맘대로 굴었다. 돈이 부족해진 데루히코는 외할아버지 가게에서 돈을 훔쳤다 걸리고 만다. 외할아버지는 데루히코를 야단쳤다. 데루히코는 외할아버지를 두들겨패고 말았다. 이 폭행으로 인해 외할아버지는 눈을 실명하고 다리에는 골절상을 입는다. 데루히코의 분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데루히코는 폭행 외에 강간과 강도를 시작했다. 18살에는 술집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과 교제했다. 필리핀 여성과 결혼한 데루히코는 시도 떼도 없이 성관계를 요구했고 이대로는 죽겠다 싶었는지 필리핀 부인은 도망치고 말았다. 데루히코의 욕구불만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야쿠자

 

살인의 시작

2월 8일 데루히코는 필리핀 술집여자를 납치하고 이틀간 감금했다. 그리고 그녀를 강간했다. 데루히코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필리핀 술집여자는 알고 지낸던 야구자에게 데루히코에게 보복해달라고 간청했다. 데루히코는 자신의 죄로 인해 졸지에 야쿠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 3일 위 데루히코는 도쿄도 나카노구 길거리에서 걸어가는 여성을 덮쳐 안면을 구타해 함몰 시켰다. 자신의 차에 여성을 싣고 집에 데려가 강간했다.

이치가와 일가족 살인사건

1992년 2월 12일 데루히코는 쇼핑을 마친 후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가던 여고생을 차로 들이받았다. 데루히코는 여고생에게 치료를 해준다며 병원에 데려갔다. 집까지 데려다준다며 자신의 차에 태우고는 흉기를 들고 여고생을 위협하며 자신의 집으로 끌고갔다. 두 차례에 거쳐 그녀를 강간했다. 데루히코는 가학성변태성욕자였다. 여고생의 얼굴과 팔에 칼을 휘두르며 몇번이나 사정했다. 강간 도중에 잠이 오자 여고생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끌어안고 잠들었다고 한다. 잠에서 깨어난 데루히코는 그녀의 학생수첩에서 여고생의 이름과 집주소를 적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협박한 후 돌려보냈다. 

그날 저녁 데루히코는 술집 주인의 요청을 받은 야쿠자 두목에게 끌려갔다. 야쿠자 두목은 데루히코에게 본인의 종업원을 이틀간 감금한 것에 대해 200만엔(2천만원)을 요구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데루히코는 야쿠자에게 알겠다고 말하고 풀려났다.

 

세키 데루히코



데루히코는 200만엔을 구할 수 없었다. 얼마전 강간했던 여고생을 떠올렸다. 돈을 마련할 목적으로 자신이 강간했던 여고생의 집에 침입한 데루히코는 할머니와 마주쳤다. 여고생의 할머니에게 예금통장을 내놓으라고 협박했지만 할머니가 말을 듣지 않자 전기줄로 목을 졸라 살해한 뒤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8만엔(80만원)을 훔쳤다. 무법자 데루히코는 집을 떠나지 않고 가족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오후 7시 여고생과 어머니가 집안에 들어서자 식칼로 협작하며 등을 보이고 업드리게 했다. 여고생은 겁에 질려 오줌을 누고 말았다. 데루히코는 엎드린 두 사람을 쳐다보며 여고생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살해했다. 여고생에게는 피와 소변이 묻은 바닥을 닦게 했다. 가학적인 본성이 드러난다.

여고생의 4살짜리 여동생이 집으로 돌아왔다. 데루히코는 여고생에게 TV를 틀어놓고 보게 하고 보모를 돌려보냈다. 여고생에게 저녁밥을 짓게 만들고 셋이서 함께 밥을 먹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여동생은 저녁을 먹고 졸리다며 할머니 방에 들어갔다. 할머니가 죽은 줄도 모르고 할머니의 시체 옆에서 잠들었다. 데루히코는 여고생에게 예금통장이 어딨냐며 추궁했다. 아버지만 알고 있따는 말에 여고생의 아버지를 기다리며 여고생을 재차 강간했다.

오후 9시 여고생의 아버지가 귀가했다. 여고생을 강간하던 데루히코는 아버지가 들어오자 식칼을 들고 숨어있다가 아버지를 덮쳤다. 칼로 어깨를 찔러 제압하고 200만엔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야쿠자에게 갚을 200만엔을 무고한 여고생 아버지에게 요구한 것이다. 딸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통장의 위치를 알려줬으나 데루히코는 욕심을 냈다. 돈을 더 내놓으라고 했다. 아버지는 회사 사무실에 다른 통장과 인감도장이 있다고 말했고 데루히코는 여고생을 시켜 아버지 사무실에서 통장과 인감도장을 가져오게 했다. 여고생은 순순히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 아버지 사무실에서 통장과 인감도장을 가져왔다. 아버지 회사 직원들이 여고생의 겁먹은 모습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인질로 잡힌 가족 때문에 야쿠자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아버지도 데루히코의 손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이튿날 새벽 6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아버지 회사 직원이 여고생의 집으로 전화를 건다. 몰래 전화를 받은 여고생은 데루히코에게 들키고 만다. 데루히코가 큰소리로 여고생을 위협하자 4살된 여고생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데루히코는 시끄럽다며 4살짜리 여동생 마저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 공포심 때문에 그동안 저항하지 못하던 여고생은 데루히코에게 달려들어 격렬히 저항했다. 데루히코는 여고생의 왼팔과 등을 칼로 찔렀으나 살해하는 데 실패했고 여고생은 경찰에 의해 구출됐다. 여고생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생존했지만 하루아침에 자신의 가족이 모두 잃어버린 고아가 되고 말았다.

일가족 살해했지만 본인은 죽기 싫었던 이기적 살인마

데루히코는 그 집에서 도망차지도 않고 있었다. 아버지 회사 동료의 신고전화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데루히코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경찰이 집으로 들어오자 자신의 흉기를 여고생의 손에 쥐게 하고 피해자인 척 연기했다. 데루히코는 경찰에게 1988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범인들도 징역형만 받았는데 그들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냐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또 다신에게 위산과다증이 있는데 사람을 때리고 강간하면서 내 힘에 자신감이 붙었고 이로 인해 위산과다증이 나을 수 있었다는 미친 소리를 했다.

이기적인 살인마 데루히코는 소년법상으로 자신이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사형을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일본 형법상으로 성인 연령 기준은 만 18세 이상이었다. 데루히코의 당시 나이는 19세로 충분히 사형을 당할 수 있었다. 사형이 확정되었고 도쿄구치소에 수감됐다. 데루히코는 본인은 죽지 않으려고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일본, 20년만에 소년사형수 사형집행

 
20년만에 소년사형수 사형집행한 일본 사법부

사형이 집행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2017년 12월 19일 44세의 나이가 되어서야 사형을 집행했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하지 않은 나라로 이부분에서만큼은 우리가 배울만하다. 한국도 일본처럼 잔인무도한 살인마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

가정환경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극악무도한 범죄

똑같이 불우한 환경에서도 미친놈이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이를 악물고 보란듯이 사회에 나와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외할아버지라는 든든한 우군이 있었지만 외할아버지의 사랑까지 폭행으로 갚은 배은망덕한 데루히코는 결국 형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가정환경을 탓하고 삐뚫어진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잘 살아갈 것인지도 결국 본인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