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 현직자 인터뷰 위계중심회사 VS 역할중심회사

2019. 2. 3. 18:38라이프/이것저것 리뷰

유튜브에서 '에어비앤비 엔지니어가 일하는 게 행복한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을 봤습니다. 엔지니어라 그런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게 인상적이고 귀에 쏙쏙 들어오더군요. 제목이 낚시성이라 고치면 '에어비앤비 엔지니어가 말하는 위계중심회사와 역할중심회사의 특징'입니다. 저는 역할중심조직과 위계중심조직 양쪽에서 일을 해봤습니다만 양쪽 모두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군대의 상명하복/유교의 장유유서 등 한국문화는 위계중심조직이 대부분입니다.


영상에서는 위계중심조직과 역할중심조직을 옮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고 양 조직의 장단점을 사례를 들어 명징하게 알려줍니다. 사회 초년생,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경력자, 회사의 임직원분들께도 추천하고픈 영상입니다.


저는 언론사와 스타트업에서 근무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요. 저의 경험을 들어 위계중심회사와 역할중심회사의 특징을 적어봅니다.


위계중심회사 '언론사에서 4년간 일하며 경험한 특징'


일반 회사와 달리 선배라는 단어를 쓰는 모습에 처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따뜻함이 있었고 선후배의 끈끈함이 있었죠. 그리고 그 뒤에는 무서울 정도로 보수적인 유교문화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선배가 술자리에서 대가리를 박으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노래방이었는데 인턴 여직원이 보는 앞에서 대가리를 박느니 차라리 맥주 컵에 얼굴을 박고 자결하고 싶더군요. 결국 박지 않고 "선배 술이 많이 되셨냐"며 넘어갔습니다만.. 지금도 생각하면 참 재밌는 에피소드입니다. 제 또래의 대기업 다니는 분들 중에 제 글을 읽고 별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그만큼 한국은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고,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위계중심조직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위에서 시키면 무조건 아래에서는 실행하는 조직 또한 제가 경험한 언론사와 같았습니다. 선배가 일을 시킬 때 꼬리를 흔들며 말을 잘 들으면 팍팍 승진하고, 선배가 시키는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X되는 것이죠. 술자리에도 부르지 않으며 은따를 시킵니다. 결국에 자기 사람들로 패거리를 만들어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상위랭크로 끌어올리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그 선배는 현재 그 회사의 편집장이 되어 있습니다. Respect!


최근 몇년간 대기업들이 위계중심조직에서 역할중심조직으로 탈바꿈하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SKT에서는 SKT 현직자들에게 해외 워크샵이라는 포상을 내걸고 사내 직원들에게 팀으로 1/2차 면접 과정을 통해 선발한 인원을 각 팀들이 직접 계획한 프로그램/기간/국가로 워크샵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내부 사정을 잘 아냐고요? 재작년 여름쯤에 SKT 인재개발원 역량개발팀에서 "재밌는 글쓰기를 주제로 강의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아서 직접 을지로 본사에서 매니저님께 들었거든요. 비단 SKT 뿐 아니라 삼성, LG 등 제조업 기반 대기업들도 창의적인 인재육성을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오랜기간 유교문화와 군대문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DNA를 바꾸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위계중심회사는 대표적으로 대기업, 제조업 기반 회사, 공무원 조직을 들 수 있겠네요. 윗사람이 시키는 일을 빠릿빠릿하게 처리하고 눈치빠르고 아부를 잘 하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조직입니다. 술/담배 잘하면 더욱 좋습니다.


역할중심회사 '스타트업 두 군데에서 3년간 일하며 경험한 특징'


대기업처럼 TOP-DOWN으로 일이 내려오는 조직에서 일하다 스타트업에 처음 가보니 죽을 맛이더군요. 저는 동남아에 본사를 둔 여행사에 들어가서 일했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여초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윗상사와 죽이 잘 맞아서 친구처럼 지내고 좋았습니다. 여기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기획안을 내고 임원-투자자를 설득한 후 방콕으로 날아가 약 3개월 동안 근무했는데요. 일을 시키는 사람이 없으니 뭐부터 해야 될지 모르겠고, 나보다 어린 친구가 본부장으로 있고, 직원들끼리 뒷담화도 엄청나고 공황상태에 빠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동료인지 적인지 한국사람들끼리 패를 갈라 싸우는 모습을 보고 역시 한국은 전투의 민족이라는 생각을 했지요. 뭐, 저도 누군가에게는 그 패거리 중에 한 명으로 비춰졌을 때니 누구를 꼬집어 욕할 만한 위인은 못됩니다. 엄청난 자산가임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는 조직관리에 여념이 없고 최근에 방콕여행 가서 과거 직원들에게 연락을 돌려보니 제가 친하게 지냈던 4명 가운데 1명만 남고 3명은 퇴사했더군요. 시스템이 없는 조직에서 한국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잘 적응을 못한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저도 1년 반 정도 있다가 퇴사했고, 방콕에서 지내던 3개월은 정말 드라마 같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경쟁사에서 태국 이민국에 여직원들 비자를 신고하는 바람에 교도소에 끌려가지를 않나 아주 다이나믹한 경험을 할 수 있었죠.


지금은 제조업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의 신사업팀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스타트업입니다. 처음에 거의 4명 정도가 모든 일을 하던 조직에서 지금은 8명 정도로 실무자가 늘어났고 그만큼 책임감도 많아졌지요. 역할중심조직의 전형입니다. 저는 원래 마케팅을 담당했는데 지금은 웹마스터(웹사이트 기획/구축/운영), 마케팅, 홍보(PR), 영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누가 시킨 일이 하나도 없고 다 스스로 만들어서 했죠. 이 네가지 역할 중에서 영업만큼은 하지 않으면 회사가 손가락 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으로 도전해봤는데 생각보다 결과물이 괜찮았습니다. 작년 11월부터 제안서를 작성해서 유관기업을 찾아 콜드콜을 진행했고 23개 기업과 미팅을 하고 현재 6개 대기업 및 3개 중견기업/스타트업과 제휴를 맺은 상황입니다. 헤드헌터한테만 연락이 오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대표들한테 연락이 오고, 연봉 1억 제안도 받아보고, 제안을 영업으로 연결해보기도 하고 고생한만큼 결실이 돌아오고 있네요.


저는 경험을 통해 위계중심회사 보다는 역할중심회사에 더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은 위계중심회사와 역할중심회사 중에 어디가 더 적합한지 빠르게 파악하셔서 저처럼 시행착오라는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합니다. Fast Try, Fast Fail! 전략을 추천합니다. 일단 양쪽을 모두 경험해 보고 자신에게 맞는 조직을 찾아서 쭉쭉 성장하시길 바랍니다.


블로거팁닷컴 독자분들의 인생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Zet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