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삶에 필요한 것이지만 예술은 삶의 목적이다.

2018. 5. 30. 00:48라이프/이것저것 리뷰

한국사회는 행복하지 않다. 우리가 세상에 행복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한다면 그는 분명 종교인이거나 철학가일 확률이 높다. 좁은 땅덩어리, 주거문제, 일자리문제, 부족한 자원, 치열한 무한경쟁, 남과의 비교, 유교문화의 폐습, 치솟는 물가까지 숨만 쉬고 살기에도 녹록지 않은 세상이다.


소확행이라는 기형어의 탄생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불행한 우리 사회가 낳은 기형어다. 최근에 참석했던 어느 외국계 기업의 마케팅 워크숍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국 본사에서 온 외국계 기업의 간부는 한국사회를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이 얼마나 처량하고 우스꽝스러운 단어인가. 큰 행복은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작고 소박한 것에서 기쁨을 찾으라는 일종의 구호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확행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시도해볼만 하다. 나 역시도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혼술을 하며 하루를 정리하거나, 예쁜 펜시용품, 명품 액세서리를 사서 나를 꾸미면서 소확행의 기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싫지만은 않은 이유다.


불행한 세상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 예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는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라는 의미심장한 대사가 등장한다. 우리가 신봉하는 기술은 삶을 윤택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모니터 앞에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은 삼성이나 애플의 기술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거나 공연영상을 볼 때 느끼는 예술로부터의 희열이다.


* 죽은 시인의 사회 명대사 https://www.youtube.com/watch?v=YQ1g5M-rcB8


매일 아침 감상하는 예술작품 Just Jerk


Just Jerk는 한국인으로 구성된 댄스크루의 이름이다. 댄스 실력이 뛰어나 이미 세계적인 댄스크루로 알려져 있다. 처음 이들의 댄스 동영상을 보고 나서 박수가 절로 나왔다. 모니터 앞에서 일어나서 약 20초 동안 기립박수를 쳤다. 춤, 팀웍, 배경음악, 무대조명까지 완벽에 가까운 안무를 보고 전율을 느꼈다. 닭살이 돋고, 소름이 끼치는 걸 보니 이건 분명 예술작품이었다. 


아침마다 영상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Just Jerk의 영상을 보고나면 하루의 시작이 밝아진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에게도 꼭 한번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3분 30초부터 들리는 가야금 소리는 황병기의 침향무를 따온 것이라고 한다. 가야금 소리와 안무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감탄을 자아낸다.



기술보다 예술에 더 가까이 있는 행복


나는 매일 30분 이상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유튜브로 감상한다. 그리고 매일 미드를 보고, 가끔씩 영화를 본다. 재밌고 감동적이고 내 마음을 움직이고 살아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작품들이 예술이다.


역설적이게도 직업적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구글 애널리틱스와 코딩(파이썬)을 배우고 있다. 디지털마케팅, 데이터 분석을 심도깊게 배우기 위해서다. 이런것들은 내가 살아가는 기쁨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다만 내 커리어와 수입에 도움을 줄 뿐이다. 내게 행복감을 주지는 못한다는 이야기다.


Just Jerk의 댄스 공연을 보는 것, 김광석임재범의 노래를 듣는 것, 한스짐머의 음악을 듣는 것, 기형도의 시를 읽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 것, 이창동의 영화를 보는 것, 미드 소프라노스를 보는 것이 나를 울고 웃게 만드는 예술작품들이고 이것들은 날 행복하게 한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냐고 내게 묻는다면 그저 예술과 좀 더 친하게 지내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