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20대의 유서를 읽고

2013. 7. 27. 00:32라이프/책&작가 평론

 

20대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쓴 것으로 알려진 유서가 인터넷 카페와 커뮤니티에 공유되고 있어 블로그에 소개합니다. 글을 이토록 잘 쓰는데, 시인이나 소설가로 성공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 재능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니 더 안타까워집니다. 글쓴이의 처지를 생각해본다면 이 또한 무리한 기대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가난한 현실을 유지하기에도 벅차, 편하게 책상에 앉아 글을 쓸 생각 조차 못했겠지요. 가난해서, 빚이 있어서, 딸린 식구들이 있어서, 그 딸린 식구들마저 저 세상으로 떠나버려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삶을 포기해야만 했을겁니다. 만에 하나,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됐다면 그 곳에서는 꼭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들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삶은 느리게 흘러간다.

힘겨운 하루가 어서어서 지나가 다시 어둠이건 다시 끝 없는 나락이건
어째도 좋으니 다시 내일이 오기를 바라며 그저 하루를 버티는데
그 하루는 너무도 길어서 내일이 오기 까지 너무도 고통스럽게 나를 옥죈다.

나는 비겁하고 유약하고 보잘 것 없는 한심한 청춘이어서
더는 인생을 살아낼 그 무엇의 동기도 부여받지 못했다.

모든 삶은 핑계로 연명되었고
모든 굴레는 남탓으로 굴러갔다.

가난해서 대학을 가지 못했으니까.
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니까.
공장 말단으로 시작한 인생이니깐.
더는 이 인생이 나아지질 않을테니까.

이러해서 이러하고 저러해서 저러하니 난 이러하고 저러하다.
하느님은 모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탓이로소이다. 가슴을 쿵쿵 치라 하셨지만
남탓만이 가슴속에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가난한 것도 내 탓이고 한달 죽어라 벌어도 집세 내고 동생들 먹이고 입하고 학교 보내고
그 와중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신 빚도 갚아야 하는
그래서 십원 한장 남지 않은 인생은 정녕 내 탓이오.

그럼에도 나는 운이 없어 그 내탓마저도 잃고야 말았지.

양 어깨엔 중학교 3학년 짜리와 고등학교 2학년 짜리가 각각 엉덩이 붙이고
앉아 내 무거웠으나 그래도 고놈들이 내 웃음이었고 하루였음을
나는 문득 문득 생각하고 잊지 않으려 했다.

내 양 어깨에 그 두놈을 난 꼭 붙들어 매고 놓지 않으려 힘을 주었고
악을 써댔지.

나 없으면 이 어린 것들 인생은 나보다 더 모질게 구겨져 다시는 깨끗하게 펴질 수나 있을까
생각하면 오소소 소름이 돋아 나는 한대 얻어 맞은 듯 정신이 번쩍하였는데
어째서 그 어린것들은 이런 나를 두고 먼저 떠났을까.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 하더니 정녕 그리하여 나를 떠난 것인지.
나는 그나마의 희망도 놓쳐버렸네.

핑계와 남탓 뿐이던 인생에 올곧은 뿌리 두개가 사라지니
나는 더는 살 수가 없어 또 어린것들 핑계를 대며 비굴한 인생을 파하네.

내가 9살 적 집을 나간 어머니가 보고싶소.
내 딱 스물 되던 해 돌아가신 아버지도 보고싶소.
작년에 그리 허망하게 간 그 두놈도 보고싶소.

보고싶은 이들은 저세상에 천지고
이 생엔 나를 기억하는 이가 없으니
나는 나를 기억하는 이들을 찾아 그만 가려고 하네.

하늘에는 부디 가난도 귀천도 없이 모두가 존귀하여
서로 행복했으면 좋겠네. 스스로 끊어버리는 목숨이라
나는 지옥행 입구로 곧장 불려 가겠지만 가기 전에 한번은
저 그리운 이들 보고나 가게 해달라 간청일랑 드려야겠다.

하루가 너무 길어 나는 그만 갑니다.

어찌도 이리 하루가 긴지 살아내느라 너무 지쳐버렸습니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