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5편의 미국드라마

2011. 11. 25. 00:03라이프/이것저것 리뷰

The killing dramas from America

제목을 짓고 난 찰나, 아차 싶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영화, 죽기 전에 가봐야 하는 여행지… 류의 패러디일 뿐인데.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7살짜리 꼬마가 내 인생 최고의 영화를 논하는 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야무지게 재미있는 미드(미국드라마)를 엄선했다는 사실이다. 알랭 드 보통의 TED 강연(A kinder, gentler philosophy of success)을 봤다. 강연중에 길거리를 걷다 무언가 머리 위로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맞는 말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목숨. 내일 지구가 멸망할 거라면 사과나무 한 그루 심는 대신에 미드나 한 편 찾아 보는 게 어떨까.



덱스터 http://www.sho.com/site/dexter/home.do

여성지 에디터를 사귄 적이 있다.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아는 것도 많고 대화가 잘 통하는 게 좋았다. 가끔씩 잘난척을 할 때면 소스라치게 재수 없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있다. 이 친구가 "웰메이드래- 나도 보내주고, 너도 꼭 봐-" 라며 소개해 준 그 미드가 바로 덱스터다. 개인적으로 CSI 류의 수사물을 극도로 혐오한다. 이유없이 싫다. 이질적이라고 해야 하나. 덱스터는 예외다. 경찰 감식반 직원이자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이다. 좋게 말하면 투잡 뛰는 바쁜 직딩, 나쁘게 말하면 양의 탈을 쓴 늑대(외모만 놓고 본다면 양 보다는 늑대) 혹은 싸이코패스다. 덱스터의 어둠을 집요하게 쫓던 직장동료이자 형사인 독스가 가스폭발로 날아가는 장면은 정말이지 유쾌, 상쾌, 통쾌! 하기까지 하다.


브레이킹 배드 http://www.amctv.com/shows/breaking-bad

미드가 재미있는 이유가 뭘까. 극작가의 내공이라든지, 방송 인프라스트럭쳐의 탄탄함이라든지 갖가지 시시콜콜한 이유들이 있을테지만 소재의 다양성이야말로 미드의 진정한 힘이자 인기의 원동력이 아닌가. 브레이킹 배드 역시 쇼킹한 연출이 돋보인다. 주인공은 화학 선생님이다. 더도 덜도 말고 딱 화학선생님처럼 생긴 대머리 아저씨다. 이 화학 선생님이 제자를 잘못 만났다. 불량 제자와 함께 마약을 제조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해프닝을 담아냈다. 가만 보면 어른들이 봤을 때, "세상 말세다-" 라고 한탄의 한 말씀씩 하고도 남을만한 소재들이 인기 미드의 주요 소재인듯 하다. 화학 원소 기호들로 만든 오프닝은 참신하고, 기발하고, 그럴듯하다. 


오즈 http://store.hbo.com/oz/index.php?v=hbo_shows_oz

강력범 수용소 오스왈드 감옥에서 펼쳐지는 엽기적인, 때론 너무도 현실적이기도 한 이야기를 어두운 스크린에 풀어놓는다. 스릴러/범죄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이만한 미드도 없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우화 수준이다. 아이들 장난이다. 피부색으로 갈리는 인종끼리의 원초적인 갈등, 동성애의 역겨움, 더러운 욕설, 무자비한 폭력, 엽기적인 살인, 동성 강간 등 감옥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유형의 죄악들이 여과 없이 흩뿌려진다. 미필적 고의를 주장하고 남을 만큼 우연한 계기로 살인범이 된 AKA(일명) '토비' 토바이어스 비쳐와, 아리아인 형제단의 수장이자 절대악 '번 쉴링어'의 갈등은 드라마가 종결될 때까지 이어지며 긴장과 흥분을 고조시킨다. 일종의 촉매제다. 흉악한 범죄자들도 언제, 누구에게 당할지 모르는 오롯이 어둠컴컴한 생지옥, 오즈다.


소프라노스 http://www.hbo.com/the-sopranos/index.html

가디언을 비롯한 언론들이 역대 최고의 미국드라마로 선정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집에서는 호구, 밖에서는 마피아보스로 활약하며 가정과 범죄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피곤한 남자의 일상을 그렸다. 주인공 T(토니 소프라노)의 힘든 일상을 대변하기라도 하는걸까. Fuck! 과 Mother Fuck! 등 거친 욕설이 난무한다. 또 중간 중간 들려오는 토니 소프라노스의 비음이 거슬릴 수 있는데 비음이야말로 의도된, 마피아 조직 보스로서의 존재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장치일 게다. 조직을 배반한 자라면 중간보스라 하더라도 가차없이 총살당하는, 실제 마피아 단원도 인정한 현실적인 드라마다. 일가족이 모인 레스토랑. 주인공 T가 보복을 당하며 마치는 설정이었을까. 수초간 검은화면으로 정지되며 정적으로 마무리 되는 엔딩은 감히 엔딩씬의 최고봉이라 평할만 하다. 마피아 조직 운영이 본업인 주인공 T는 가정에서도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의 의도와 달리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무시 당하는 모습은 현실세계의 여느 아버지와 다름 없다. 미드의 굉장한 면모는 여기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이한 소재로 주목시키고, 가족애를 선두로 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이용하며 청중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더킬링 http://www.amctv.com/shows/the-killing

누가 로지 라슨을 죽였나? 라는 문장이 붉은 피로 새겨진 포스터에 보이듯 더킬링은 한 소녀의 죽음을 수사하는 경찰과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범죄 스릴러 드라마다. 1시즌이 나오고 다음 해를 기다려야 하는 각별한 고초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길이 없다. 훈련소를 퇴소하고 이제 갓 자대배치를 받은 신병이 "곧 (시간)간다" 라는 말년병장의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듣고 끝이 보이지 않는 군생활을 떠올리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지옥이다. 그래서일까. 전시즌이 종료될 때까지 참았다 한번에 몰아서 보는 이들을 더러 본다. "이 놈이 범인이야" 라고 나름의 결론으로 막바지에 다다랐는데 보기좋게 뒤통수를 치며 1시즌을 마쳤다. 더킬링의 시즌2가 너무도 기다려지는 밤이다.